[일사일언] 그때 왜 그랬어요

방호정·작가 2022. 6. 30.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돌아왔다. 전국 각지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부산으로, 특히 해운대와 광안리로 일제히 몰려들기 시작하는 시기다. 지난 팬데믹 시절의 여름에도 해외로 나갈 순 없지만 어디선가는 놀아야 하는 피서객들이 해변을 가득 메웠다. 올 여름도 부산을 향할 수많은 이들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조금 색다른 부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자갈치 시장 앞 광장에 서서 바다 건너 영도를 바라보면 노란색으로 빛나는 뚜렷한 문장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깡,깡,깡’ 망치 소리 멈추지 않는 수리 조선소가 있는 ‘영도 깡깡이 마을’ 앞을 장승처럼 지키는 짧은 문장은 ‘그때 왜 그랬어요’. 이광기 작가의 공공 설치미술 작품으로 저녁 6시 이후 불이 켜져야 볼 수 있다.

설치 당시나 이후로도 여러번 주민들 항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때 왜 그랬어요’는 아주 강력한 파장을 내뿜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누군가를 향하는 ‘저격글’이 아니라, 나름 피하려 노력해도 별다른 방도가 없는 ‘융단폭격글’이다.

가끔 남포동, 자갈치 일대를 산책할 때면 바다 건너에 걸린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고 온다. 진짜 그때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자발적으로 혼나기 위한 반성의 시간. 비린내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낡고 녹슬었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정박해 있는 어선들, 힘차게 주변을 비행하는 갈매기, 늙은 거리 연주자가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구슬픈 선율을 노래하는 가운데 어두워질 무렵 바다 건너 떠 있는 ‘그때 왜 그랬어요’란 문장이 어두운 수면 위로 일렁인다. 주변의 풍광과 공기와 소리, 냄새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상대적으로 무난한, 그러니까 매우 밝고, 희망 차고 긍정적인 문장이었다면 누구의 마음도 깊이 건드리지 못하고 잊혔을 것이다. 실행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지나간 옛사랑을 만나면 말없이 함께 보고픈 풍경. 부산을 찾는 수많은 이들 중 물놀이와 흔한 음주가무로 채워질 수 없는 공허를 간직한 이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보기를 제안한다. 혹시나 홀로 눈물을 삼키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서로 모른 척해주자. 근데 진짜 그때 왜 그랬을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