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만나야 하는 이유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2022. 6.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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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가 넘친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여행 계획도 세운다. 나도 학생을 교실에서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사각형의 화면에서 편의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만나는 것에 모두 익숙해졌는지 앞으로도 비대면 소통방식이 선호될 것이라고 한다. 효율성이나 공리적 필요에 따른 접근성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편리함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다. 그러나 불편하게 보이는 대면 접촉은 다중 감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경로를 제공했었다. 우리는 말과 글뿐만 아니라 표정과 동작으로, 함께 모인 넓은 공간의 레퍼토리를 활용해서 다양한 기호적 자원을 사용하고 조합하는 방식을 직관적으로 배워왔다.

눈앞에 펼쳐진 대면 공간이 거추장스럽고 산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반복적인 소통의 행위가 지루한 낭비와 과잉의 의례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우린 효율성의 가치로만 살 수 없다. 우정도, 사랑도, 학습도, 어떤 종류의 열의와 헌신도, 투입과 효과를 예측하는 효율성으로 관리될 수 없다. 인간과 사회를 향한 유희적이면서 관대한, 또는 진지하면서도 상호작용적인 호기심은 사각형의 화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잘 아는 사람끼리 화면에서도 반갑게 만날 수 있다. 이미 기득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언제든 마이크와 영상을 켜둘 수 있다면 화면 속 소통이 크게 불편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형편이라면 네모난 화면은 인격적인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시선이든, 말차례든, 소통방식의 절차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이항으로 분리된다. 말은 겹쳐지기 힘들고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소통하기가 더욱 조심스럽다.

평면의 화면 안에 갇힌 듯한 다수의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도 좀처럼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평면의 화면에서 그들에게 능숙하게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나는 비대면 소통의 효과성에 관해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만 없다.

만날 수만 있다면 일단 다시 만나야 한다. 사각형 밖 넓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져보는 대면의 의사소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섣부르게 효율성의 가치로 교육부가, 혹은 개별 대학이 거대한 규모의 온라인 강의나 정체불명의 비대면 교육과정을 빠른 속도로 확장하자고 다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한편으로 나도 온라인 강의가 편해졌다. 그러나 한 학기를 열심히 가르쳐도 화면 속 학생들과 웬만한 친밀감조차 나누기 어렵다. 가치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민망할 때가 많다.

예전에 코로나19가 공포스러운 수준으로 확장될 때 교회가 문을 닫았다. 교회 앞에서 나이 드신 분이 울먹이며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도록 간청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았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가하면 되지 굳이 저러고 싶냐’며 책망 가득한 댓글들이 달렸다. 나는 그분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대면 예배는 그분이 오랫동안 지킨 귀한 의례였고 의지적인 삶의 실천이고 기쁨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관광지를 TV 화면으로 보면서 구경할 수도 있다. 그래도 굳이 비행기를 타고, 그곳을 걷고, 직접 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면은 모든 감각을 동원할 수 있고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모험적이고 주도적인 앎의 경로였다. 대면적 소통은 우리를 낭비하게 하고 갈등하고 싸우게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부터 우린 각자 삶의 고유성과 열의를 품을 수 있었다.

평생 대면의 전통에서 가르치고 일하고 꿈꿔온 분들이 새로운 시대와 비대면 매체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비아냥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우리의 서로 다른 모습과 입체적 경관이 여전히 우리 삶의 가장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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