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숲세권의 공동 주민, 도롱뇽과 나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입력 2022. 6.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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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나의 최대 관심은 도롱뇽이었다. 사연은 이러하다. 3년 전 어느 날, 친구들과 일삼아 다니던 동네 산의 그 뻔한 등산로가 좀 지겨워진 우리는 다른 샛길로 접어들었고, 고즈넉한 그 오솔길에서 아주 작은 웅덩이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엔 “여기 도롱뇽이 살아요”라고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다. 들여다보니 과연 올챙이처럼 생긴 도롱뇽 새끼들이 오글거리고 있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특히 올해는 도롱뇽알부터 목격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는데 3월의 웅덩이에는 한천처럼 투명하되 모양은 꼭 순대같이 생긴 타원형 알집이 열 개 가까이 생겨나 있었다. 한동안은 그 속에 점처럼 박혀있던 알들이 타원형이 되고, 또 거기서 머리, 몸, 꼬리의 형태가 생겨나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는 낙에 살았다. 그리고 5월 초순, 아가미까지 생긴 도롱뇽 새끼들은 드디어 알집을 뚫고 나와 꼬리를 흔들며 힘차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야호!!

그 후엔 약간 심드렁해졌다. 봄 가뭄이 심했고 밭작물이 타들어 간다고 농부들이 애면글면했지만, 몹시 바빴던 나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이었다. 이 가뭄 때문에 도롱뇽 웅덩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산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가뭄에 웅덩이 진흙 바닥이 드러났고, 누군가 귀인이 그곳에 생수통을 가져다 놓아 오가는 사람들이 물을 붓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장자>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길 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붕어가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을 청한다. 그 사람은 월나라 오나라 왕을 만나 양쯔강의 물길을 터서 너에게 도달하게 해주겠다고 호기롭게 대답한다. 그러자 붕어는 “지금 저는 늘 함께 살던 물을 잃어버렸어요. 있을 곳이 없어요. 물 한 모금만 있으면 됩니다.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서 저를 찾으시는 게 더 낫겠습니다”라며 발끈한다. 물 한 모금 절실한 자에겐 명분이나 정책 따윈 소용없다. 오직 즉각 행동뿐!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물을 지고 산에 올라가 웅덩이에 물을 부었다.

하지만 가뭄은 지독했다. 아무리 부어도 물은 웅덩이에 머물지 못하고 바짝 마른 땅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고 도롱뇽 새끼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결국 6월 초쯤, 앞에 말한 그 도롱뇽 귀인은 그 아이들을 1km 정도 떨어진 다른 웅덩이로 옮기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날 그분과 내가 살려서 이사시킨 도롱뇽 새끼는 겨우 여덟 마리였다.

새집은 옛집에 비해 웅덩이도 좀 크고 산에서 약수가 흘러나와 물 마를 걱정은 없어 보였다. 여기서라면 잘 살아갈까? 이후에도 거의 매일 산에 올라 그 웅덩이를 살폈지만, 새끼들은 잘 보이질 않았다. 대신 근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물 먹으러 온 청설모와 새들을 매번 마주쳤다. 아뿔싸, 이 웅덩이는 애당초 청설모와 새들의 쉼터였구나. 은밀하고 호젓하고 얕은 웅덩이를 선호하는 도롱뇽에게 여기는 너무 많은 시선에 몸 둘 바 모르겠는 ‘한데’나 다름없었다. 나는 갑자기 헷갈렸다. 불가피했지만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얼마 전 전원주택을 지어서 이사한 친구는 텃밭에 출몰해 기껏 가꾼 작물을 다 뜯어 먹는 고라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탄천에 출몰한 너구리가 주인과 산책 중이던 강아지를 물어뜯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원래 이곳의 주인이 그들 - 도롱뇽, 너구리, 고라니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그들이 살던 곳을 침탈하여 ‘숲세권’이라는 새로운 인간 중심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야생동물과 우리 모두 동등한 생명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지만 이제 서식지가 겹치게 되면서 각자 자기 영토에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자주 마주치고 종종 긴장 상태에 놓인다. 공존할 수 있을까? 동화책 <고라니 텃밭>에서는 ‘고라니가 망친 텃밭’에서 ‘고라니를 위한 텃밭’으로 나아가는 작은 실천적 지혜를 우리에게 건넨다.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인 양서류, 도롱뇽과의 공생은 나에겐 좀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들의 헌 집이 마구잡이로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집을 수리해주는 게 맞는지, 새집을 자꾸 마련해주는 게 맞는지도 가늠이 안 된다. 어쨌든 이 숲세권의 풋내기 주민인 내가 오래된 주민인 도롱뇽의 살 권리를 함께 책임져줘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장마가 끝나면, 내 관심조차 스트레스를 줄까 봐 걸음을 자제했던 새집 도롱뇽의 안위부터 좀 살피러 가봐야겠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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