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데자뷔
8년 전이던 2014년 6월.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당권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비박(비박근혜)계의 대표 주자로 김무성 의원이 나섰고, 친박(친박근혜)계는 좌장이던 서청원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 양측은 한 달여간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고, 김 의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사생결단식 대결의 이유는 2년 뒤 있을 총선 공천권. 비주류의 수장에서 새누리당 2대 대표에 오른 김 의원은 2015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2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여당 대표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상향식 공천을 천명했다. 권력자에 의한 내려꽂기, 이른바 ‘사천’을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여전히 서슬 퍼렇던 박근혜 대통령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 생존 불안감을 느끼던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환호했지만, 친박(친박근혜)계는 박 대통령에 대한 반기로 해석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박심(박근혜의 의중)’이 담긴 공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이를 차단하고 자신의 ‘대권 길닦기’를 위해 상향식 공천을 들고나왔다고 의심했다. ‘김무성식 상향식 공천’은 100%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 김 의원이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세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 친박계의 인식이었다.
양측은 결국 2016년 4월 총선 공천에서 정면 충돌했다. 친박계는 공천관리위원회를 통해 입김을 행사했고, 김 의원은 당 대표의 권한으로 제어하려는 힘겨루기가 격해졌다. 그러다 양측은 폭발했다. 당 대표가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고 낙향하는 ‘옥새 파동’이 벌어진 것이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새누리당은 그 해 총선에서 2당으로 전락했고 이는 ‘박근혜 탄핵’의 시발점이 됐다. 김 의원도 총선 패배로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고, 대권 꿈도 물거품이 됐다.
시간은 흘러 국민의힘은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고, 지방선거에서도 완승했다. 그리고 다시 총선을 2년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이 돌아왔다. 그런데 여당의 모습은 왠지 기시감이 든다.
이준석 당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혁신위를 띄웠다. 투명한 공천 룰 마련이 혁신위의 역할이라고 공언했다. 지방선거 출마 등으로 비게 된 전국 47개 당협위원장 공모에도 돌입했다. 공정한 공천 룰을 마련하고, 인재를 찾는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 대표의 언행으로 미뤄보면 혁신위가 마련할 공천 룰은 100% 경선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 전략공천의 투명성 확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세력은 이런 조치를 ‘이준석 사당화’를 위한 정지 작업으로 의심한다. 윤 대통령의 임기 중반 국정 뒷받침이 아닌 ‘이준석의 미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한 윤핵관 측 인사는 “여당에 혁신위가 구성된다는 것을 대통령이 언론 보도를 보고 알게 되는 상황이 정상이냐”고 친윤(친윤석열)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친윤계는 다음 달 7일 국민의힘 윤리위에 상정된 ‘이준석 징계’ 심의를 주시한다. ‘포스트 이준석’ 국면을 상정한 당권 장악 시나리오도 분분하다. 징계 심의를 앞둔 이 대표는 윤핵관과 안철수 의원이 연대해 자신을 흔든다고 확신한다. 여당의 모습이 8년 전 어느 시점에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여소야대 국면. 국민은 지방 권력을 여당에 몰아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여권의 초기 난맥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당내 권력투쟁이 난무하고, 대통령실과 정부 간 정책과 인사 혼선도 빚어진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한 달 반 만에 부정 평가가 긍정을 앞지른 ‘데드크로스’를 맞았다는 소식들이 잇따른다. 이 대표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그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을 넘는다는 조사도 나왔다.
동반 추락. 언젠가 본 것 같지 않나. 여당은 정부와 한패가 되는 세력을 뜻한다. 국정을 책임진다는 의미다. 여당다움을 회복하길 바란다.
박태우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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