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인재로 성장할 기회, 40대에도 줘야 한다

한경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前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2022. 6.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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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바뀌고 미국 대통령이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고 나니 그동안 힘을 받지 못하던 인재 양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규제가 문제란다. 오죽 답답했으면 대통령이 교육부가 경제 부처처럼 일해야 한다고 했을까마는, 서둘러 쏟아지는 인재 양성 대책들을 보면 진정한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물론 국내 교육계에서도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의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실천이 있었다. 특히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최근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유네스코의 ‘교육의 미래’ 보고서는 19세기 산업화 시대에 유효했던 ‘근대학교’가 이미 그 수명이 다했다고 진단하면서 새로운 사회계약으로서 교육 혁신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교육이 공공재이며 공동재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당면한 인재 양성과 관련해서도 큰 함의를 갖는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한다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 완화와 반도체 관련 학과 및 계약학과의 증원과 증설 등 정책은 안타깝게도 낡은 ‘근대학교’ 시스템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듯하다. 창의적 발상을 통해 고등교육을 혁신, 발전을 도모하는 에볼루션(evolution·진화)이라기보다는 과거 성공했던 방식을 더욱 치열하게 추구하는 인볼루션(involution·내향적 정교화)에 몰두한다고나 할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색하며 경계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지 현재의 지식과 기술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해법은 자명하다. 첫째, 대학에서는 학과·전공 상관없이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들 전원에게 초대형 강의와 원격수업을 통해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과를 신설하고 증원할 것이 아니라 도전하겠다는 학생들 모두에게 입문 과목들을 수강할 기회를 주고 입학 당시의 전공과 상관없이 자유전공, 복수전공, 연계전공, 연합전공, 부전공에 사후 전공 인정까지 총동원해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된다. 둘째, 평생학습을 혁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학벌에 대한 집착과 입시의 모순 때문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잠재력과 소질을 제대로 계발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20대 후반과 30대, 심지어는 40대 ‘청년들’도 반도체나 AI를 공부하고 싶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대학과 기업이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인재 양성부터 졌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혹독한 조종 훈련을 통과한 일본 해군 조종사들이 무과실·정예주의를 자랑했던 것도 잠시. 얼마 후 심각한 조종사 부족에 허덕이게 되면서 마리아나 해전에는 풋내기들이 제로전투기를 몰고 출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과 달리 미 해군은 서열과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았고 다양한 인재에게 폭넓게 기회를 주었으며 능력에 따라 이들을 활용했다. 진주만 기습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은 미 태평양함대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마셜-길버트제도 기습과 도쿄에 대한 둘리틀 공습 작전을 성공시키며 미 해군의 사기를 끌어올렸던 홀시 제독은 사관학교를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했다. 구축함을 타다가 무려 52세에 아들보다 어린 소위들과 함께 비행학교에 입학했고, 착륙하다 활주로를 이탈해 ‘날아다니는 얼간이(Flying Jackass)’ 메달을 달고 다니는 수모도 겪었지만, 그는 미 해군 역사상 단 3명밖에 없었던 5성 제독의 한 사람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도전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이와 배경을 불문하고 가능한 한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창의성과 주도성과 유연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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