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7번째 파병국’ 잊힌 용사들

김동현 기자 2022. 6.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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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는 5년 전 부임하면서 자국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수소문했다. 아버지의 친구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참전 용사 찾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6·25전쟁 때 유엔군 소속으로 한국에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네덜란드 등 16국이다. 이곳에 멕시코는 포함돼 있지 않다. 당시 미국과 맺은 병역 협약으로 미군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장엔 멕시코 국기가 걸려 있지 않아서, 이를 서운해한 병사들이 대통령에게 “국기를 게양해 달라”는 편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멕시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특별 전시 '나는 한국에서 돌아왔다' 개막식에 참석한 멕시코 참전용사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알마다(아래 왼쪽), 안토니오 로사노 부스토스(아래 오른쪽)가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전쟁기념관

중남미 이민자교육후원회 등 국내외 관련 단체들은 중남미 장병 18만명 이상이 6·25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중 최소 10만여 명이 멕시코인 혹은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다는 게 주한 멕시코 대사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6·25 참전국 중 미국에 이어 둘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관련 자료가 없어 미 국방부 기록보관소에 남아 있는 개인 기록에서 출생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긴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이들은 멕시코와 한국 어디에서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선 28일 주한 멕시코 대사관 등 주최로 멕시코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특별 전시가 개막했다. 피게로아 대사가 찾은 생존 멕시코 참전 용사는 5명. 이 중 1명은 작년 별세했고, 건강과 일정 등을 고려해 방한이 가능했던 3명이 전시를 보러 서울을 찾았다. 70여 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이 노병들은 모두 90세 안팎이다. 이들은 “내가 아는 한국은 폐허였는데, 이렇게 발전한 모습을 보니 기쁘다”며 환히 웃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중미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는 6만1000명을 6·25전쟁에 파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적으로 총인구 대비 파병 비율이 가장 높은 룩셈부르크보다 30배 이상 많은 규모다. 하지만 미국령으로 정식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참전국 명단엔 오르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 푸에르토리코는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에 독자적 깃발을 들고 출전하는 등 외교·국방 부문을 빼곤 점차 독립적인 색을 띠고 있다. ‘17번째 파병국’이란 이름을 붙이긴 어렵겠지만, 여타 참전국 못지않았던 이들의 희생이 잊혀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해외 참전 용사들은 일면식도 없는 한국 국민을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헌신했다. 현재 대부분이 80~90대일 것을 고려하면, 이들이 살아있을 때 모두 알려지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 보훈 전문가는 “복지는 요람부터 무덤까지지만, 보훈은 전쟁부터 사후(死後)까지”라고 했다. 이들의 공로가 늦게라도 밝혀져, 우리 역사로 조명받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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