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35] '유쾌한 시골 영감'의 '서울 구경'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입력 2022. 6. 30. 03:02 수정 2022. 9. 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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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로 시작하는 노래를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서영춘의 노래로, 누군가는 양석천의 노래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듣고 뜻도 모르면서 노래에 나오는 웃음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노래가 음반으로 처음 발매된 것은 1936년이다. 강홍식이 발표한 ‘유쾌한 시골 영감’이 ‘서울 구경’의 원조다. “시골 영감님께서 서울 구경을 떠나시었는데, 자못 유쾌한 장면이 많았겠다”라는 강홍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난생처음 기차를 탄 시골 영감이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좌충우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유쾌한 시골 영감’의 진짜 원곡은 따로 있다. 찰스 펜로즈(Charles Penrose)가 1922년에 발표한 ‘The Laughing Policeman(웃는 경찰관)’이 ‘유쾌한 시골 영감’의 직계 조상이다. 우스꽝스러운 경찰관을 소재로 한 이 노래도 노래 중간의 웃음소리가 재미있는 노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흑인 민요를 뜻하는 ‘쿤 송(Coon Song)’ 중 하나인 1890년대 조지 존슨(George Johnson)의 ‘The Laughing Song(웃음의 노래)’도 만날 수 있다.

‘유쾌한 시골 영감’을 들으며 웃다가도 시골 영감에게 왠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식민지 조선을 살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만나기 때문이다. 근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골 영감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는 대륙을 향한 일제의 야욕과 우리 조선의 수탈을 상징하기도 했다. 철도를 놓기 위해 희생된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 그 빠름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기차에 적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차갑고 냉정한 근대의 질서인 시간과 규범에 길들여지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유쾌한 시골 영감’은 당대인이 느낀 당혹감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노래라 할 수 있다.

6월 28일은 ‘철도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개통한 날인 1899년 9월 18일 대신, 철도국을 설립한 1894년 6월 28일로 철도의 날을 변경하여 2018년에 제정한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철도가 개통된 지 어느덧 123년이 되었다. 현재 우리는 그 시절 기차보다 훨씬 빠른 교통수단과 함께하고 있다. 점점 빨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오히려 느린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빠름’이 모든 것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잠시 멈춰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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