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함께 울고 웃는 '새움'.. 자살유가족 모여 아픔 보듬는다

김윤정 입력 2022. 6. 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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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가족 치유 공간 '새움', 작년 11월 문열어
그림 그리고 애도하고..다양한 치유 프로그램
"자살 유가족, 사회적 이해·도움 절실"
"누구든 치유·회복하고 갈 수 있는 열린 공간"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컵라면이라도 같이 끓여 먹고 따뜻한 차 마시고… 얘기하다 웃고, 울 수 있는 곳이에요.”

서울 성북구의 자살유가족 모임 공간 ‘새움’. 이곳은 유족들이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듬는 공간이다. 지난 22일 방문한 새움에선 일대일 유가족 상담이 한창이었다. 대면 상담을 위해 새움을 찾은 유족이 있는가 하면, 스케치하던 그림을 마무리하러 왔다는 유족도 있었다.

지난 22일 서울 성북구 ‘새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인순 상담사. 오른쪽은 유가족들이 직접 그린 미술 작품.(사진=김윤정 기자)
자살 유가족 마음 ‘치유’ 돕는 새움

노란빛 은은한 조명에 대형 테이블, 좌식 테이블과 안락한 쿠션, 전기포트와 각종 티백 등이 구비된 안락한 카페 같은 공간인 이곳에서 유족들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새움을 관리·운영하는 ‘한국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유족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꾸민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새움은 지난해 11월 개소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 이들의 유족이 언제든지 방문해 정기 모임, 상담은 물론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기본 프로그램으로는 7주 과정의 ‘애도 프로그램’과 매주 월요일 진행되는 ‘드로잉 수업’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유족들끼리 정기모임도 갖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에 달할 정도로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가족인 ‘자살 유가족’ 역시 국가와 사회가 보듬어야 할 대상이지만, 적극적인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유족들은 우울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의 자살 사망 사실을 알리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유족은 전체 157명 중 128명(81.5%)를 차지했고, 해당 설문에 참여한 유족의 약 80%(124명)는 우울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새움’은 정기 프로그램 외에도 상담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재 하루 2~3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으며, 대면 상담이 어려우면 전화 상담도 가능하다. 새움에는 박인순 상담사 등 2명의 상담사가 있다. 박 상담사는 2009년 아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후 상담사가 돼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있다.

“같은 아픔 겪은 사람으로서 함께 치유”

박 상담사는 유가족 치유에 있어서 ‘공간’의 중요성을 짚었다. 예컨대 가족이 집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집은 더이상 마음 놓고 쉬는 공간이 될 수 없다. 박 상담사는 “일이 있고 난 뒤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새움은 그러한 사람들도 마음을 추스르면서 같이 먹고 마시고, 울다 지치면 가서 눕기도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개소 7개월째를 맞은 새움 곳곳엔 유족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애들이 장난쳐놓은 것 같죠? 붓 하나로 7명이 1분씩 돌아가면서 그렸어요. 참 우스워 보이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이 모여서 완성된 거예요.” 박 상담사는 유족들이 드로잉 시간에 그렸다던 중앙 테이블 위 대형 그림을 소개했다. 그림 속에는 밝은 표정을 한 유족 7명이 만세를 하며 즐겁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책꽂이 곳곳을 비롯해 복도 양옆에도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

새움 곳곳에 걸린 유가족들의 미술 작품.(사진=김윤정 기자)
새움을 찾은 유가족 A씨는 “누구를 만나도 위로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이해하니까 만나고 싶더라”며 “‘내 얘기 좀 들어줘’ 하며 새움에서 만난 인연들은 같이 웃고 우는 사이가 됐다”고 했다.

박 상담사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족들은 충격을 당해서 혼돈 속에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는데, 또 항상 우울한 ‘환자’는 아니다”며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새움 역시 마냥 슬픔만 가득한 곳은 아니다. “이곳에선 조금 울기도 하고, 까르르 배 잡고 웃기도 해요.”

박 상담사는 새움이 누구든 찾아와 위로받고 가는 ‘열린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몰라서 못 나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누구든 힘들 때 와서 위로받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을 돕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윤정 (yoon9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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