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의 길, 에너지 전환..'공공성 조화' 난제 풀어야 옳은 길[팩트체크 민영화]

배문규 기자 입력 2022. 6. 29. 21:57 수정 2022. 6. 2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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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공공성
윤석열 정부가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시장 구조를 확립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하면서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의 전력산업 개편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신속한 에너지 전환과 공공성을 조화시켜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제주 한경면에 조성된 탐라해상 풍력발전단지. 강윤중 기자
윤석열 정부 전력정책과 기후에너지단체 입장

·전력 판매시장 개방 : ‘전력구매계약(PPA) 허용 범위 확대’, ‘한전 독점판매 구조 개방’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시장활용론) ‘민간사업자들의 이윤 추구로 시민 부담 가중될 것’(사회공공성론) 주장이 충돌

·전기요금 원가주의 확립

→시민들에게 공공재를 안정공급하는 공기업의 역할을 감안할 때 부채규모를 요금인상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사회공공성론)

→시장 원리에 따라 연료비의 등락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어야 함.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필요.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려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다른 복지 재원을 끌어다쓰는 셈(시장활용론)

늦더위로 서울 낮 기온이 31도까지 치솟은 2011년 9월15일 오후 3시. 갑자기 전기가 끊겼다. 폭염으로 급증한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전력당국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과정에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것이다. 신호가 꺼져 도로가 마비되고, 공장이 멈춰 원료를 폐기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병원에선 수술이 중단되고, 건물 승강기에 사람이 갇혔다.

400만가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 당시 사태는 빗나간 수요예측과 성급한 단전이 불러온 ‘인재’였지만, 화석연료와 원전에 의존해 값싼 전기를 누려온 에너지 체계의 문제점이 표출된 사건이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때 이른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이달 들어 한때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전력 사정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시장 구조 확립”을 위해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한다는 내용을 두고 ‘민영화 논란’이 빚어졌다. 인수위는 “독점적 전력판매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도, 전기, 가스, 공항 등 공기업 민영화는 검토한 적도 없다”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공공기관 개혁’과 ‘전기요금 인상’이 맞물리며 민영화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력 부문은 여타 공공 부문의 민영화 논란에 비해 논점이 복잡하다. 에너지 소비가 많을수록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기 때문에 공공성의 척도가 달라진다. 환경단체와 노동계가 전력시장 개편을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이런 사정 탓이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공공성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은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까

“한전 독점체제 해체 등 시장 개방을”
“자본의 새로운 이윤획득 전장 될 것”
환경단체·노동계 ‘전력 개편’ 이견

윤석열 정부 전력정책 중 논란의 핵심은 ‘전력구매계약(PPA) 허용범위 확대 등을 통한 한국전력 독점판매 구조 개방’, ‘전기요금 원가주의 요금 원칙 확립’이다. 원전 분야를 빼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PPA 확대는 기후환경단체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기 위해 요구해온 정책이다. 대선 TV토론을 통해 이슈가 된 ‘RE100’과도 맞물려 있다.

‘RE100’은 기업이 쓰는 전력을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하자는 국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원전, 화력, LNG, 신재생 등 여러 방식으로 생산한 전기를 한전이 사들인 뒤 발전단가의 평균을 내 각 기업에 판매하는 현행 전력판매 체제하에서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만 골라서 살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 전기에 한해서는 발전회사가 한전을 통하지 않고도 기업에 직접 팔 수 있는 ‘직접 PPA’를 허용하도록 문재인 정부 당시 전기사업법이 개정됐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3월 환경단체와 노동계는 정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그린피스는 전력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환영했다. 반면 공공운수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판매시장을 민영화하는 법안 통과를 규탄”했다.

홍덕화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 전환 운동 방향을 세 갈래로 구분했다. ‘시장활용론’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에너지 전환의 지름길로 보는 반면, ‘에너지 사회공공성론’은 전력산업을 재공공화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에너지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지역화·공유화론’은 협동조합과 같이 에너지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적 경제를 통한 에너지 분산화를 모색한다.

시장활용론자들은 그린피스·기후솔루션 등 기후환경단체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포진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양이원영·이소영 의원 등이 시장활용론 입장에 서 있다. 양이원영 의원이 지난달 페이스북에 쓴 글은 시장활용론을 잘 보여준다. “발전소는 한전 자회사인 한수원을 포함해 발전공기업들도 있고 민간기업들도 있습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도 공기업이건 민간이건 누구나 생산할 수 있습니다. … 전력시장 개방은 민영화가 아니라 더 많은 시장 참여자들을 늘려서 누구나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에너지민주주의’입니다.”

전력 부문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한국 탄소배출 총량의 40%에 달한다. 석탄발전을 없애고 전기차를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력 부문의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기후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와 원전에 기반한 한전 독점 체제를 해체하지 않는 한 에너지 전환이 어렵다고 본다. 저장이 어렵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특성에 맞춰 전력시장도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국에선 전력이 (싼 전기료를 통한) ‘유사 복지’로 운영되어 왔는데 더 이상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며 “당장 RE100이나 탄소국경세 등이 수출 장벽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기사업은 발전-송전-배전-판매로 나뉜다. 발전시장은 2000년대 초반 민영화 정책으로 한전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할된 데 이어 대기업이 진출했다. 재생에너지 부문에서는 지자체·민간협동조합의 참여가 늘고 있다. 송배전은 시장 참여자가 다양해질 경우 ‘망중립성’이 중요해지는 만큼 한전이 송전공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판매시장이 개방되면 결국 자본력 있는 대기업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판매망이 탄탄한 가스·통신회사들이 전기 결합 상품을 내놓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동통신시장의 KT처럼 한전도 민간사업자와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석광훈 위원은 “여러 한계는 있지만 통신시장이 독점 체제였다면 5G 기술까지 선도적 발전이 가능했을까”라며 “발전, 판매, 수요관리, 보조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혁신이 경직된 공기업 체제하에선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민영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무적 판단에서 자유로운 독립규제기관이 전력시장을 감독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인상 ‘뜨거운 감자’

전력구매계약 허용범위 확대 등
윤 정부 정책 기조, 문 정부와 비슷
전기료 인상에 ‘민영화 우려’ 커져

한전은 지난 27일 3분기 전기요금에 적용할 연동제 단가를 kWh당 5원 인상으로 확정했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이 7조7869억원을 기록했다.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이 지불하는 전력 도매가격(SMP)은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동결된 탓이다. 지난 4월 SMP는 kWh당 202.11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주택용 전기 판매단가가 100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밑지고 판 셈이다. 한전이 연료비 요인에 따른 적자를 면하기 위해 제출한 3분기 조정단가 인상액은 33.6원이니 올해 30조원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윤석열 정부의 전력판매시장 개방 방침과 맞물려 ‘민영화 우려’를 키운다. 요금 인상이 전력시장 기업 참여를 유인하는 ‘민영화의 사전 포석’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하지만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며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의 첫발을 뗀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기후환경운동 진영은 요금을 올려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31위, 산업용 전기요금은 22위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제조업 비중이 크다보니 전기 사용량은 최상위권이다.

석광훈 위원은 “전기요금을 유사 복지로 사용해 적자를 정부가 메꾸다보면 결국 다른 복지에 쓸 재원을 고갈시키는 것”이라면서 “인상분은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저소득층에 대해선 요금 할인이나 보조금 지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가격의 변화를 소비자들이 인식해야 기업이 고효율 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생기고, 가계도 절전 노력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공기업의 역할을 감안할 때 부채 규모를 과도하게 문제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론도 있다. 구준모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전은 전기요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채를 지나치게 위험시할 필요는 없다”며 “요금 인상이 민생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굳이 요금 인상을 해야 한다면 공급자의 과도한 이윤을 줄이는 방안도 병행해야 공정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성

발전시장 개방 노동조건·안전 악화
과도한 이윤 추구, 소비자 부담으로
에너지 소비 많을수록 기후위기 가속
공공성에 대한 정교한 논의 필요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흐름과 맞물리며 20여년 동안 추진돼온 ‘전력 민영화’의 부작용도 외면해선 안 된다.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공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노동조건과 안전을 악화시켰다. 하청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려 숙련도 낮은 청년들을 고용했다. 발전공기업 간의 수익성 경쟁 구도가 만들어낸 비극이 2018년 12월 사내 하청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었다.

발전시장이 개방되면서 민자발전은 전체 발전산업 중 발전량 20%를 넘어섰다. 시민이 낸 전기요금이 LNG·석탄발전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이익으로 돌아갔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나서 비판을 받았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해상풍력 사업에 매쿼리, 블랙록 같은 외국 금융자본들이 진출하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7~2021년 약 11조원이 보조금 명목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지불됐다. 민영화된 재생에너지 발전산업 구조가 공고해질수록 발전사업자들이 가져가는 금액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이 자본의 새로운 이윤 획득 전장이 되면서 서민 부담을 키울 것이란 주장을 기우로만 보기도 어렵다. 앞서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력 공급가격이 30% 이상 높아지자 일부 전력회사들이 전기료를 두 배로 올리고, 소규모 전력회사들이 폐업하며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업체들 간 경쟁으로 전기요금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시장이 능사가 아니며, 공공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에너지산업의 재공공화론은 이런 우려를 바탕으로 한다. 구준모 위원은 “한계가 있지만, 공기업이기에 오히려 변혁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민주적 통제를 통해 재생에너지로, 재생에너지 특성에 맞춰 지역사업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지자체·주민과의 공공 협력 모델 역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자원을 공유화하고 민간사업자의 초과 이익을 환수해 정의로운 전환에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후단체들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한전 체제에선 변화가 쉽지 않다고 본다. 기후솔루션은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전력시장의 진입 규제와 보상 체계가 화석연료 대다수를 보유한 한전 발전자회사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며 “한전의 최악 적자를 기회로 미래 전력원이 화석연료 자산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단체와 노동단체 간 이견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시장활용론이 ‘이윤동기’를 동력으로 삼아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려는 것이라면, 노동계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를 지향한다.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6년 3.05%에서 2020년 6.41%로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여전히 유럽연합(2020년 기준 37.5%)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이익 사유화, 환경파괴 등 논란이 불거져온 상황을 고려하면 시장만이 ‘옳은 길’인지 의문이 인다. 반면 공공 부문의 경직성을 감안할 때 이른 시일 내 재생에너지 체제로 환골탈태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나온다. 신속한 에너지 전환과 공공성을 조화시켜야 하는 난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홍덕화 교수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원전을 두고 진영이 갈리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유사한 지점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며 “공공성이라는 키워드는 대안을 모색하고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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