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일본이 내준 숙제하듯..정보 흘려 분위기 조성"

지종익 입력 2022. 6.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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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한편, 일본 기업 국내 자산의 현금화 절차는 막바지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르면 8월, 대법원은 한국 내 자산 현금화 관련 미쓰비시 측의 재항고를 기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산 매각과 현금화의 실현 가능성이 시시각각 커지면서 한·일관계 회복을 선언한 정부의 초조함도 커지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민간 협의회를 구성한다', '양국이 300억 원대 기금을 만든다'는 등 관련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금화 절차에 들어가면 양국 관계는 더 냉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금화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소송 당사자는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에 강제동원됐던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해결책 찾기'에서 빠져 있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산됐던 것도 정작 피해자는 논의에서 제외됐다는 비판 때문입니다.

일련의 움직임과 관련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당사자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시민단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측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첫 마디는 '처음 듣는다' 였습니다(이하 상자 안은 모두 이 모임 대표의 답변입니다).

기자 : 300억 원 기금 얘기 된 내용입니까? 아니면 피해자 측은 제외된 논의 내용인가요?
시민단체 대표 : 몰랐어요. 처음 듣습니다.

외교부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민관협의회'에 대한 논의도 사전에 없었습니다. 시민단체와 한 차례 만남은 있었지만, '기구' 설립에 대해서 외교부 실무자는 오히려 부정했습니다.

외교부가 수일 후 또 한 차례 만남을 요청했지만 피해자 측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무조건 만남을 피할 수만도 없는 상황입니다.

혹시 외교부가 구상하고 있는 '민관협의회'가 피해자를 제외한 기구일 가능성은 없을까? '위안부 합의' 당시의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해결 방식으론 또다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피해자)를 빼 놓지는 못합니다. 저도 현재까지는 다음주 외교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만나자는데 안 만나겠다고 할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 누가 참석할 것인지 확인 없이 갈 수는 없죠. 그래서 그것에 대해 설명을 달라고 했고, 조만간 그 부분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그 답도 못들은 상태라는 거죠. 아마 그 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외교부도 좀 고민일 것입니다.

피해자 측에선 당연히 민관협의회 구성을 위한 외교부의 '인선 작업'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인선 작업'이라고 했는데, 인선은 그들 구상일 뿐입니다. 그날 모임의 성격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어이없는 희망사항일 뿐이죠."

수년 전부터 유력한 안으로 오르내리는 '대위변제안'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고, 일본 측에 청구하는 방안입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피해자 측에 협의회, 기금, 대위변제 방식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접촉 과정에서 기금이나 대위변제 등 이 문제를 놓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 없습니다. 민관합동기구라는 명칭도 언론을 통해 언급됐었고요."

정작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들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 측과 접촉하려는 노력도 전혀 없습니다.

한국 정부의 갑작스런 움직임이 '일본'에 보여주기만을 위한 것 아닌지 피해자 측이 강한 의구심을 갖는 이윱니다.

"일본이 답안지 내라고 한다고 해서 마치 숙제 풀기 위해서…만남 자체가 공표되고, 숙제 풀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는 건 아니죠. 정부에서 (일본 측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피해자 측이 외교부가 내놓는 안들에 찬성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정보를 흘리며 분위기를 만들려고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은 안했지만 그런 구상을 내심 갖고 있을 가능성은 높죠. 피해자 측에서 정부 구상대로 따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결국 위 시민단체는 내일(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의 움직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7월 1일이면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출 규제를 시행한 지 3년이 됩니다. 때마침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번엔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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