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유지됐지만..진짜 뇌관은 '다단계 하도급'

윤경재 2022. 6. 29. 19: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BS 창원] [앵커]

최근 화물연대 파업으로 올해 말 끝나기로 돼 있던 안전운임제가 일단 유지되게 됐습니다.

하지만 물류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떤 제도를 마련해도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다단계 하도급 실태가 어떤지, 또 대안은 무엇인지, 화물 운송 과정을 동행하며 취재했습니다.

심층기획팀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14t 화물 트럭을 모는 23년 무사고 경력의 정충훈 기사.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 이른바 1군 운송업체 소속입니다.

오늘의 임무는 오후 2시 창원에서 전자제품을 싣고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까지 가는 겁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걱정입니다.

왕복 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면 300㎞ 넘는 거리를 빈 차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터당 3~4㎞ 연비에 2천 원 넘는 경유 가격을 감안하면 경기도에서 창원까지 편도 기름값만 20만 원 넘게 들어 적자 운행을 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운임료가 낮은 2~5군 하도급 업체의 화물을 실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충훈/화물트럭 기사 : "빈 차로 오면 남는 게 없거든요. 거기에서 또 물량을 받아서 와야 하는데, 거기에서 자고 밥 사 먹고 집에 못 들어가면 손해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름값 수준인) 30만 원, 25만 원이 돼도 내려오려고 하다 보니까 운송료가 차이가 크게 나는 거죠."]

화물의 주인인 수출입 대기업, 화주는 중개업체를 통해 1군 운송업체에 화물 운송을 맡깁니다.

이때 1군 업체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화물은 2군 업체에 하도급되고, 2군에서 다시 3군, 3군에서 4~5군 업체로까지 내려갑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업체들이 하도급을 주면서 챙기는 거간비, 이른바 주선 수수료의 상한선이나 기준이 없다는 겁니다.

각 단계별 업체가 적게는 2~3%, 많게는 20% 넘는 수수료를 챙기면서 정작 화물을 운송하는 기사는 화주가 부담하는 원가의 60~70%만 받게 됩니다.

다단계 하도급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화물운송 앱을 살펴봤습니다.

경기도에서 경남까지 오는 운임료가 30만 원에서 50만 원대로 천차만별입니다.

택배처럼 무게나 거리에 따른 기본료도 없습니다.

화물차 2~3대만 등록해놓고 거간비 명목의 수수료 장사를 하는 소규모 운송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정작 기사들이 받는 돈은 때때로 기름값도 안 나올 정도로 낮습니다.

[정충훈/화물트럭 기사 : "1군에서 떼는 수수료가 있을 테고, 2군에서도 떼고 3군 떼고 4군 떼고 하니까 수수료들이 계속 운송료에서 깎이다 보니까 화물차주들한테 오는 수익이 떨어지는 거죠."]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없애지 않고서는 어떤 정책적 지원도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화물차 기사들은 이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는 대안으로 안전운임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왜 그런지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컨테이너 운송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봤습니다.

30년 경력의 트레일러 기사 옥희흥 씨.

부산신항에서 빈 컨테이너를 싣고 충남 금산의 한 타이어 제조공장으로 가 수출용 타이어를 싣고 오면 61만 원을 받습니다.

화주인 타이어 회사가 지급하는 운송 원가 69만 원에서 1군 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 12.8%만 빠진 겁니다.

기름값과 연동해 운송비를 책정하는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아 화물원가의 80% 후반의 일관적인 운임료를 받고 있습니다.

안전운임제 적용 전엔 일관된 운임 기준이 없어 부산신항에서 충남 금산까지 같은 거리를 오가더라도 지금의 절반 수준인 30만 원대 운임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옥희흥/트레일러 기사 : "운송사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있었죠. 저가 경쟁이 사실 많았죠. 운송료가 10만 원에 계약돼 움직이는 회사가 있었다면 그다음 날 B라는 회사가 9만 5천 원에 가겠다면 바로 넘어갑니다."]

안전운임제는 정부와 화주 등이 협의해 석 달에 한 차례씩 기름값과 연동한 운송비를 정합니다.

최저임금제처럼 기사가 받는 최소한의 운임료가 책정되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업체가 챙길 수 있는 수수료도 공개됩니다.

여러 업체가 하도급을 하더라도 정해진 수수료 안에서 나눠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수료를 무한정 받을 수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도급 단계는 줄어들게 되는데요.

한국교통연구원 연구 결과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가격 입찰을 통한 운송 계약이 줄었고, 다단계 운송 거래도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단계 하도급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중소 운송업체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원준/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 "안전운임제 아래서는 화주가 직접 배송을 담당하는 사람한테 줄 돈이 확정되거든요. 운송업자들 사이에서 여러 층에 걸쳤던 하도급이 확 줄어들게 되죠. 1차 운송업자 입장에서는 거기다가(주선만 하는 업체가 아닌 실제 중소 운송업체에) 일감을 배정하는 게 맞잖아요."]

국토교통부는 하도급을 축소하는 안전운임제의 산업 구조 개선 효과를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그래픽:박재희

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