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론스타 ISDS 중재 절차 종료..론스타 악몽 20년만에 끝날까

이효상 기자 2022. 6. 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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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10년 싸움이 올해 안에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 중재 사건을 맡은 중재판정부가 한국시간으로 29일 ‘절차 종료’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10년간 이어진 중재 절차가 끝난 것이다. 누가 이겼는지는 120일(최장 180일) 안에 나올 판정문을 받아봐야 알 수 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오래된 악몽’이다. 론스타는 휘청이는 외환은행을 샀다가 되팔아 차익으로만 약 4조원을 챙겼다. 그러고도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46억8000만달러(약 6조원)를 배상하라는 투자자·국가 중재를 신청했다.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는 ‘투기자본의 먹튀에 놀아났다’는 비판을, 해외에서는 ‘외국 자본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헐값 매각이냐, 아니냐

론스타 먹튀 논란의 시작은 2003년이다. 그해 론스타는 외환위기, 카드대란으로 휘청이던 외환은행 경영권을 인수했다. 논란의 핵심은 ‘자격도 없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어떻게 샀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은행법은 외국자본의 경우 금융회사에게만 국내 금융기관 인수를 허용했는데, 론스타는 골프장도 운영해 금융회사라고 보기 어려웠다. 론스타는 ‘국내 부실은행을 인수할 때는 금융회사가 아니라도 인수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이용해 외환은행을 사들였다.

그러자 외환은행이 정말 부실은행이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부실은행은 대출 등이 포함된 위험가중자산에 비해 자기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지면 부실은행이라고 본다. 외환은행은 2003년 론스타에 인수되기 직전 금융감독원에 그해 말 BIS 비율이 6.16%로 전망된다고 보고했다. 반면 외환은행 이사회에는 BIS 비율을 10%로 보고했다.

이 문제는 수사로 이어졌다.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BIS 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춰 헐값에 매각해 외환은행에 손해를 입혔다며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론스타가 ‘먹튀’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매수해 외환은행을 헐값에 샀다고 결론내렸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이름도 더러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론스타 수사팀 검사였다. 반면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검찰이 외환은행 매각 논의의 시작점으로 본 ‘10인 회의’의 일원이었다.

법원 판단은 1·2·3심 모두 무죄였다. 헐값에 팔려는 것이 아니라 론스타와의 협상 결렬을 피하기 위해 BIS 비율을 낮췄다고 봤다. 자금 투입 여력도 없고, 다른 인수자도 찾지 못한 정부가 론스타와의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취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론스타, 먹고 튀다

사모펀드는 헐값에 인수한 기업을 구조조정한 뒤 되팔아 수익을 낸다. 론스타는 2005년부터 호시탐탐 외환은행을 팔아치우려 했다. 거래 성사가 가까운 때도 있었다. 2007년 론스타는 60억달러를 받고 HSBC에 외환은행 경영권을 넘기려 했다. 매각 승인 여부를 정부가 검토하는 사이 글로벌금융위기가 닥쳤고, HSBC는 인수를 포기했다.

2010년 변양호·이강원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뒤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대금은 43억달러였다. 금융위원회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매각 승인을 미뤘다. 2011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유죄 판결 이후에야 금융위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경영할 자격을 잃었다고 보고, 지분 매각명령을 내렸다. 당시 누구든 외환은행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장내에서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금융당국은 아무 조건 없는 매각을 결정했다. 이미 하나금융지주와 매각 계약을 체결해두었던 론스타는 35억달러에 외환은행을 팔고 한국을 떴다.

■앙금의 10년, 결과는?

몸은 떠났어도 앙금이 남았다.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간 중재(ISDS)를 신청했다.

론스타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두 차례나 지연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HSBC에 외환은행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승인을 미루는 바람에 차익이 줄었다는 것이다. 둘째, ‘부당 과세론’이다. 한국이 론스타의 페이퍼컴퍼니가 있는 벨기에와 체결한 협정에 따라 론스타에 면세 혜택을 줘야하는데, 국세청이 자의적으로 과세했다는 것이다. 셋째, 미래 발생할 세금도 손해배상액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론스타가 승소해 손해배상금을 받아도 한국 정부가 또 과세할 수 있으니 손해배상금에 미리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심리기일에서 매각 승인심사는 정당한 행정조치였고, 론스타를 차별 없이 대우했다고 반박했다.

판정문에 어떤 결과가 담길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론스타 주장이 온전히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론스타는 이미 한국 법원에 과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 일부 승소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세금을 손해배상액에 포함시켜 달라는 론스타 측 주장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의 완전한 승소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ISDS는 애초 외국자본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이다.

한국이 패소할 경우 당시 정책 결정권자인 경제·금융 관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 론스타가 제시한 합의안을 받아들여 비용이라도 줄였어야 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올 수 있다. 정부는 중재절차를 진행하면서 로펌 법률 자문 비용 등으로만 지난해까지 469억원을 썼다.

론스타와의 악연이 한동안 더 지속될 수도 있다. 중재 결과에 불복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중재판정부가 명백히 권한을 이탈한 경우, 판정에 이유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등에 한해 판결문 수령 120일 이내에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취소 청구가 있을 경우 취소위원이 새로 선임돼 취소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취소 청구를 하더라도 결론이 뒤집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 정부는 2018년 이란 다야니 가문이 청구한 ISDS 사건에서 패한 뒤 영국 고등법원에 취소 소송을 냈으나 기각됐다.

법무부는 “판정이 선고되면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판정문을 분석하고, 관련 법령 등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투명하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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