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인신공격' 논란 캐리커처 전시회, 소송이 최선?
흔치 않은 사례에 전문가들 의견도 제각각
기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논란을 빚은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서울민예총)의 캐리커처 전시회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 등이 서울민예총과 전시 작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29일 기자협회 쪽은 “서울민예총 전시회를 통해 얼굴 캐리커처와 이름, 소속사 등 개인정보가 노출된 기자들 중 8개 언론사 소속 22명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며 “현재 변호사와 함께 최종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민예총은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광주 메이홀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비판 기사 등을 보도한 언론인과 일부 정치인 등 110명의 얼굴 캐리커처와 이름, 소속 매체명 등을 적시한 전시회 ‘굿바이 시즌2’전을 진행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캐리커처에는 붉은색을 덧칠했고, 그 옆에는 말풍선 형식으로 해당 기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을 붙였다.
이에 대해 기자협회는 해당 작품 관련 포스터에서 기자를 비하하는 표현인 ‘기○○’이란 용어가 여과 없이 등장하고, 기자 개인의 이름과 소속 매체명이 그대로 공개되는 만큼 캐리커처 당사자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자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시회 개막 직후인 3일에는 ‘서울민예총의 왜곡된 언론관에 비탄을 금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전시회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대의 신분을 노출시키고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술이 갖는 표현의 자유가 아닌 또 다른 폭력이며 언론탄압”이라는 게 기자협회 쪽 주장이다.
반면 전시를 기획한 작가들은 기자협회의 성명에 대해 “(해당) 기자들은 예술 풍자의 대상조차 되어선 안 되는 존재인가”라며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인권을 방패 삼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행위를 멈추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서울민예총과 기자협회, 예술가와 언론인이 각각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라는 가치를 두고 충돌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 보니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미디어 분야 전문가들의 판단도 제각기 다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기자를 일반적 의미의 ‘공인’으로 보기 어렵고, 기자가 쓴 기사 또한 기자 개인의 창작물이 될 수 없는 만큼 기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다. 황 교수는 지난 24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예술 창작을 통한 예술가의 비평 행위 자체는 표현의 자유 범위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식별 가능한 수준의 개인정보 노출과 함께 기자 개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인격권 등 권리침해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또 그는 “엄밀히 말하면 기자 개인은 공인이라기보다 ‘다수의 공중에게 노출돼 있는 직업인’의 위치에 있기에 사실 굉장히 취약한 존재”라며 “기자가 속한 매체나 소속사가 아니라 개인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건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인 또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태도다. 박 교수는 “법적으로는 캐리커처나 간단한 의견 표명 정도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언론인이기에 언론 자유를 위해 더 공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라면 그건 잘못된 선민의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교수는 이번 소송이 결과에 따라 언론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장 신문사만 해도 만평을 통해 비평하고 기자도 칼럼을 통해 일상적으로 비판하고 때로는 조롱한다”며 “만약 이번 사안에서 나타난 정도의 견해 표명으로 해당 작가가 불리한 판결을 받는다면, 앞으로도 사법부는 견해 표명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자협회의 소송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박 교수는 지난 23일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서 이번 사안을 두고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할 집단과 예술의 자유를 지켜야 할 집단이 서로 충돌한, 연구자인 저로서도 처음 보는 풍경”이라며 “그러니 양측 모두 격앙된 분노를 조금 잠재우고, 양자가 서로의 권리를 ‘부인’하는 듯 보이는 발언이나 행동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박 교수는 “저 역시 논란이 된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이 특정 언론인을 ‘기○○’로 ‘박제’하는 행위였고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한층 심층적인 고민을 새로 시작하는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혜가 언론 종사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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