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과 선거, 잔치는 끝났다

한겨레 2022. 6. 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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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왜냐면] 최경호 |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은 ‘용적률 뻥튀기’를 경쟁적으로 외쳤다. 건물의 지상연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눈 비율인 용적률은 수치가 클수록 토지 위 건물의 밀도가 높아진다. 도심 선호가 강해진 요즈음, 주택공급을 위해 기존 시가지의 용적률을 높이는 방안은 언뜻 매력적으로 보인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용적률이 높아지면 일반분양분이 늘어나니 조합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용적률 상향 약속을 남발한다.

그러나 용적률은 ‘남의 돈으로 내 집을 바꿔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자칫하면 물리·사회·환경적 차원에서 파국을 부른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수직이동과 지하개발에 드는 비용이 체증하니 ‘고층화의 한계이익이 체감’하는 것이 물리적 한계다. 70층 이상은 한 층을 더 올릴 실익이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용 인구에 비례해서 설치해야 하는 승강기 대수를 줄이려면 가구 수를 줄여야 하니 개별 주택 면적은 커진다. 실제 초고층 아파트들도 대개 70층을 넘지 않고 모두 고급주택이다. 지하에서는 굴착 비용뿐만 아니라 물 처리 문제도 만만찮다. 지하수 부력에 의해 건물이 치솟지 않으려면 닻으로 고정하거나(저항) 배수펌프를 설치해야 한다(순응). 지하수위가 변하면 싱크홀 등 안전 문제도 생기거니와, 비용 때문에도 주택문제의 대중적 해법이 못 된다.

사회적으로는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가 문제다. 간척지는 인접 토지주의 것이 아니다. 용적률 완화는 토지를 수직으로 늘리는 간척사업인 셈인데, ‘인접’ 토지주에게 땅을 함부로 넘긴다면 공공에 대한 배임이다. 법정 한도 이상으로 완화된 용적률은 공공지분이 돼야 하는 이유다.

5층을 15층으로 키울 때는 전체 인구도 늘고, 농어촌에서 도시로,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들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15층을 45층으로 만드는 정도다. 그러나 미래에 45층이 135층이 되려면 채울 양의 차이는 과거의 9배다. 이미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과반이다. 이주민 증가에도 한계가 있다. 훗날 ‘축소재개발’해야 한다면 미래세대의 세금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한편 건물 간 거리를 좁히면 일조시간이 줄어 난방비가 증가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해지고 탄소배출은 늘어난다. 여러모로 다 같이 망하는 길이다.

에너지효율 측면에서 적정 인구밀도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용적률로는 300% 이하 수준이다. 이보다 낮은 경우가 차라리 문제지, 점 차원의 역세권도 아닌, 넓은 단위의 면 차원으로 초고밀화하겠다는 ‘용적률 500% 4종 주거지역 신설’ 같은 발상은 진단도 처방도 틀렸다. 900%가 넘는 주택도 있다는 반론이 있지만, 그들은 운 좋게 바로 옆에 공원이나 하천을 둔 특수한 경우다. 면 단위로 보면 이들 용적률은 200%대로 떨어진다.

서울을 고밀화할수록 위성도시 집값은 하락한다는 주민들의 걱정까지 고려하면 용적률은 제로섬 게임이다. 대규모 정비사업을 동시에 벌이면 집값은 앙등하고 리스크와 파급효과도 증가한다. 멸실효과로 이주민이 대량 발생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용적률의 지역이기주의가 작동하기 쉬운 선거도 당분간 없다. ‘그린·순환’으로 정비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절체절명의 기회다. 용적률은 적정 수준 안에서 늘리되, 모두의 미래를 위해 ‘제로에너지 주택’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정비사업을 지원하자. 노후도가 부족해도 에너지 성능이 낮다면 사업을 허가할 수도 있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비용을 30년 무이자로 빌려주는 외국 사례들처럼 우리도 녹색금융을 활용해 보조금, 출자, 융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자. 수요 분산을 위한 국토 균형발전 노력과 함께 ‘토지주택은행’ 같은 기능을 통해 순차 정비 로드맵을 만들거나 용적률 거래를 매개하는 것도 공공의 역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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