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여야의 치킨게임, 의미없다
자동차 레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유명 블록버스터 영화시리즈인 '분노의 질주' 중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치킨게임(겁쟁이게임)'이 등장한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서는 주인공인 도미닉 토레토와 악당 데카드 쇼가 정면충돌하는 장면을 2차례의 치킨게임으로 연출했다. 영화답게 결말은 주인공의 승리였다.
치킨게임의 유래는 195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명의 운전자가 각각 차량에 탑승해 서로 정면충돌하는 코스로 질주하면서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방식의 치킨게임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패자를 '치킨'(겁쟁이)이라고 불렀던 것이 게임의 이름이 됐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치킨게임의 결말은 영화와는 다르다. 멋지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최근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놓고 양보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8일 당 소속 의원 170명 명의로 7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국회 의사과에 제출했다. 원 구성 협상이 장기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국회 공전이 길어지자 민주당 단독으로라도 국회 의장단 선출에 나서겠다고 국민의힘을 압박한 것이다. 민주당의 소집 요구에 따라 3일 뒤인 7월 1일부터는 임시국회 회기가 시작되고 본회의도 열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의회 독주'라고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020년 전반기 국회의 재연이 될까 매우 우려스럽다"며 "더욱이 지금은 국회의장이 공석인 상황으로 의사 일정을 작성할 주체가 없고, 국회법상 본회의 개의 근거 규정 역시 없다"고 문제 삼았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2년 전 53년 만에 여야 합의 없이 단독 선출된 박병석 국회의장에 이어 또다시 국회의장 단독 선출이라는 악행이 반복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을 가로막았던 장애물은 법제사법위원장을 누가 가져가느냐 하는 줄다리기였다. 민주당은 전반기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수용해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는 대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마무리인 사개특위에 참여할 것과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권한쟁의 심판을 취소해달라고 요구조건을 걸었다.
그러자 협상의 걸림돌은 사개특위로 넘어갔다.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두 가지 조건을 붙였다"며 "뭐 달라진게 하나도 없는 완전 조삼모사인데 마치 선물 양보하듯 통 큰 양보한 것처럼 언론에다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수완박 의장 중재안에 제가 사인한 건 맞지만 이후 국민적 반발 내지 국민의 비판에 직면해서 그 합의를 파기했고, 그리고 검수완박법 처리할 때 저희가 강경투쟁 한 것"이라며 "이미 검수완박법에 대해 국민의힘은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잘못 했다는 것을 다 고백 했는데, 만약 민주당이 말한 것처럼 사개특위를 정상화하고 헌재에 제소한 권한쟁의심판을 취소한다고 하면 결국 검수완박법에 대해 동의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조건에 거부의사를 밝힌 권 원내대표는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 차 필리핀으로 떠났다. 다음달 1일에나 귀국한다.
여야의 하릴없는 자리 다툼에 벼랑 끝에 걸린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1만1194건이다. 이 중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 등 협력업체가 원청에게 받는 납품단가가 증·감액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하도급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나 유류세 인하폭을 최대 50%에서 100%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 등은 속도가 필요한 민생법안이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관련한 제·개정안 10여 건 △부동산 보유세 부담 완화 관련법 △'안전운임제' 연장 혹은 일몰제 폐지 관련법 △기업 규제 완화법 △노동시장 개혁법(근로기준법) △산업육성법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및 국가지원 확대법 △임대차 보호법 등에도 먼지가 쌓이고 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한시가 급하다. 윤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 29일까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해놨기 때문에 30일부터는 청문회 없이도 임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음주운전 전력과 선고유예 논란, 김 후보자는 자녀 취업특혜 의혹, 관사 갭투기 의혹 등이 불거져 여론이 좋지 않다. 만약 윤 대통령이 청문회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두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철저히 직무유기를 한 국회의 탓이다.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쌍방과실이다.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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