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보다 좋은 언론 가려내는 '미디어 교육' 중요해요"
22년 수업 1만4740분 녹화
"판자촌 출신 키워준 고마운 학교"
후배들 위해 장학금 1억원 기부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요즘,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미디어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국가 차원의 미디어 교육으로 수용자가 좋은 언론을 골라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언론 신뢰도 회복될 거라고 봅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연희관에 있는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언론학자 강상현 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해선 수용자들의 ‘골라보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 소비자들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치·경제세력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단호히 반대하고,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소비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언론이 바뀔 거라는 얘기다. 지난 32년간 언론학자로서 강단에 서고,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2022학년도 1학기를 마지막으로 모교에서 은퇴해 명예교수가 된다.
그의 연구실 책장 한쪽엔 여전히 비디오테이프와 시디(CD)가 가득했다. 여기엔 1997년 1학기 연세대 부임 이후 줄곧 맡아 온 ‘현대화법’(스피치소통론) 수업에서 학생들을 찍은 영상이 담겨 있다. “수업 실습과제 중 하나인 ‘자기소개 5분 스피치’와 ‘조별 토론’을 영상으로 남겨 학생 본인이 말하는 소리, 내용뿐 아니라 표정, 몸짓, 시선, 의상, 청중의 반응 등을 모두 보면 자신의 말하기 습관을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영상 기록 매체는 테이프, 시디, 유에스비(USB) 등으로 변했지만, 이렇게 찍어 모은 영상이 22년 치, 1만4740분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강 교수는 이러한 기록을 두고 ‘보물’ 같다며 “유명인이 된 제자들의 모습도 많이 담겨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미디어는 ‘말’이라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능력,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와 배려,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여러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 등은 오늘날에도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성공의 길로 향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항상 학생들에게 “‘말 잘하기’보다 ‘잘 말하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경청’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할 때 국회에 가면 항상 의원들은 질문해놓고 답을 못하게 하더라고요. 우리 사회에 자기 얘기만 하려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 순간이었죠. 말이란 결국 상대방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데에서 ‘잘 말하기’가 시작되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설득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강 교수는 지난 2009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공동위원장, 2012년 한국방송학회 회장 등 언론학자로서 정치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의 중요성을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야당 때 주장하던 지배구조 개편안을 집권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시하는 관행이 있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일관된 철학이 아쉽다”고 했다. 2018년부터 3년간은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을 맡아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심의와 인터넷 게시글 등 통신분야 심의를 총괄했다. 그는 “임기 동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이 크게 사회 문제가 되면서 디지털성범죄 소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내용물을 신속하게 규제함으로써 2차 피해를 막은 것이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했다.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세대에서 평생을 보낸 강 교수는 “연세대는 판자촌 출신으로 가난했던 제게 장학금을 주고, 생활비까지 챙겨주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참 고마운, 나를 살려준 학교”라며 “저와 처지가 비슷한 후배들도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 은퇴하며 모교에 1억원을 기부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떠나보낸 후에도 1억원을 아내의 모교인 서강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딱딱한 논문 등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 꿈이었던 ‘문학’에 도전할 계획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인생은 역동성의 등가물’이라고 종종 말했어요. 움직이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지요. 저 또한 자신감을 가지고 매사에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젠 전공 책보다는 살아오면서 시나 수필처럼 느낀 것을 정리한 글들을 쓰고 싶어요. 우리 말 우리 글로 된 값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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