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계좌 7번이나 거래 풀렸는데..'그놈 목소리' 귀막은 당국·은행

조윤진 기자 입력 2022. 6. 29. 18:06 수정 2022. 6. 2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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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교묘해진 금융사기]
<하> 금감원도 금융사도 책임회피 급급
현행법엔 신종사기 수법 규정 안돼
계좌 명의인 거래제한 이의제기땐
銀 "개인금융정보" 이유로 풀어줘
금융당국은 "금융사 판단" 불구경
지급정지·피해구제 심사하는 은행
경찰·피해자 요청에도 소극적 대처
[서울경제]

신종 금융 사기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피해 규모도 불어나고 있지만 금융 당국과 은행은 손을 놓고 있다. 법률상 사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 반복하며 피해 구제에 소극적이다. 금융 당국과 은행의 소극적인 대응은 로맨스 스캠, 대리 베팅, 암호화폐를 이용한 다단계 수신 등 신종 금융 사기를 전화시키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기통신금융사기’, 즉 보이스피싱이나 대출 사기 등 피해자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전화로 금융사에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금융사는 같은 법 제4조에 따라 요청이 들어온 계좌가 사기 이용 계좌로 의심할 만하면 즉시 해당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금융 당국이나 검찰이 요청해야만 움직인다. 혹시 모를 손해배상 등의 문제를 회피하겠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현행법 테두리에 신종 금융 사기 수법들이 규정돼 있지 않다며 발을 뺀다. 금융 사기 피해 정보망인 디치트에 등록된 피해 사례가 이날 기준 154만 건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금융 당국과 은행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경찰이 지급정지 요청해도 안 받아” 은행 소극 대처

은행 등 금융사가 지급정지 조치나 피해 구제 여부를 심사하다 보니 일부 은행에서는 피해자의 계좌 지급정지 요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다수의 신종 금융 사기 피해자 및 경찰 사이에서는 A 은행이 악명 높다. 한 경찰 관계자는 “A 은행은 지급정지 요청에 비협조적”이라며 “내부 판단 때문이겠지만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없다 보니 경찰 쪽에서 공문을 보내도 응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4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총 9400만 원어치의 금융 사기를 당한 피해자 A 씨는 “4개 은행 계좌에 돈을 보냈는데 주거래은행인 A 은행을 통해 타행 계좌까지 지급정지를 시키고 피해 구제를 신청하려 하니 점포 ‘뺑뺑이’를 돌리거나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A 은행 측은 검찰이 나서지 않는 한 피해 구제 절차에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은행 관계자는 “검찰의 요청이 있지 않는 한 (피해자 직접 요청 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지급정지를 해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은행은 경찰이 공문을 보내면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고객 민원이나 손해배상 책임 등이 발생할 수 있어 검사 요청이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5대 시중은행 및 국책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계좌 지급정지 현황’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5개월간 A 은행의 계좌 지급정지 건수는 1764건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 같은 기간 A 은행 계좌가 사기에 이용됐다고 금융 사기 피해 정보망 ‘더치트’에 등록된 건수는 전체 25개 은행사 중 네 번째로 많은 7482건에 달했다.

◇금융 당국 “은행 결정에 개입 못 해”

금융 사기 예방에 앞장서야 할 금융 당국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신종 금융 사기는 특별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정이 안 돼 관리 감독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채팅 환전 사기 등 사기 수법의 수단이 전기통신으로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특별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 조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금감원은 전기통신금융사기만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보니 은행의 결정에 대해서도 가타부타할 수 없다는 것이 금감원의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하면 처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근거가 없다”며 “은행 입장에서도 계좌 지급정지는 상대 계좌 예금주, 즉 계좌 주인에 대한 재산상 침해가 가는 것이라서 근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은 17일 한 시중은행 B계좌에 대해 470만 원 규모의 ‘채권 소멸 절차 개시’를 공고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B계좌에 470만 원을 입금한 것이 확인됐으니 계좌 명의인의 권리는 사라지고 그 돈이 피해자에게 다시 지급되는 절차가 진행된다는 의미다. 금감원에 따르면 B계좌는 지난해 3월 말부터 15개월간 사기 이용 계좌로 총 일곱 차례나 금융거래가 정지됐다가 풀렸다를 반복했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금융거래 제한이 풀린 것은 6월 3일이었다. B계좌는 금융거래 제한이 풀린 지 2주도 안 돼 또 470만 원의 사기에 이용된 셈이다. 사기 이용 계좌인데도 금융거래 제한이 반복적으로 풀리는 것은 계좌 명의인의 이의 제기가 들어올 때마다 은행이 해당 계좌의 거래 제한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은행이나 금감원 모두 책임을 회피한다. 은행은 개인 금융 정보라는 이유를 대고 금감원은 이의 제기 역시 “금융사가 판단하도록 돼 있어 판단의 옳고 그름 자체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의원은 “코로나19로 보이스피싱은 물론 다양한 방법의 금융 사기가 증가하고 있지만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 시스템은 더딘 것이 현실”이라며 “범죄자가 수익을 편취하고 피해자 구제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 개정뿐 아니라 금융 당국의 예방 시스템 고도화 역시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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