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 '낮잠'에 투자 묶여.."재진부터라도 원격 허용해야"

임지훈 기자 2022. 6. 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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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 2부. 규제 주머니 OUT
<6> '화석화' 법률에 원격의료 제자리
코로나에 '한시적 허용'됐지만
엔데믹 정국서 불법으로 될수도
리스크 커 선제적 투자 등 발목
정부 "원격 재진 허용 방법 고려"
민주당·의협도 '찬성' 입장 밝혀
반대 적은 사안부터 법제화 필요
[서울경제]
명지병원 의료진이 원격의료를 진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 해외 근무자 및 가족의 안전한 건강 관리를 위해 명지병원 MJ버추얼 센터와 ‘원격 상담 및 의료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제공=LG디스플레이

연간 수억 건 VS 2년에 350만 건. 최근 2년간 국내 병원 등에서 진행된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원격의료)의 이용 실적이다. 코로나19로 원격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환자가 혜택을 누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면 진료와 비교하면 실적이 미미하기 그지없다. 350만 건의 원격의료마저도 속을 들여다보면 화상 시스템 등을 활용한 그럴 듯한 원격의료라기보다는 전화 상담 진료가 대부분이다.

이용자 10명 중 8명은 편리하다고 입을 모으는 원격의료 이용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의료법은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허용된 상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임시로 허용됐던 원격의료는 다시 불법이 될 수 있다. 결국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원격의료를 준비해온 병원들과 플랫폼 업계는 모두 헛투자를 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 서울에 있는 한 병원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도 아직 내국인 대상으로는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지난해 말부터 내국인을 상대로 비대면 진료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의료법이 개정될 것으로 보고 투자를 진행했지만 정상 가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전했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원격의료를 강화하려던 병원들의 의지도 꺾이고 있다. 수도권의 한 병원 관계자는 “화상 시스템 등 투자를 해야 하는데 원격의료 허용 기관을 의원급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어떤 병원이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원격의료를 준비하던 병원들도 손을 놓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원격의료 서비스 개발 기업들은 더욱 심각하다. 수백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도 이렇다 할 투자를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택배 시스템 말고는 딱히 투자할 곳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법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원격의료 서비스 플랫폼 업계는 의료계 등의 압박에 밀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 도입을 위한 협의체에서도 제외됐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원격의료 시스템에서 핵심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이 아예 논의의 틀 안에도 끼지 못했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우리보다 몇 단계 상위 서비스를 개발·도입하고 있어 경쟁에서 뒤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의료계·정부·민간 등의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초진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일단 재진부터라도 시작해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일부 재진 환자 허용’이라는 단서를 달 경우 무조건 반대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진부터 허용할 경우 현재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법제화의 문턱을 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다수석을 확보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강병원·최혜영 민주당 의원이 장기 진료가 필요한 고혈압·당뇨·부정맥 등의 재진 환자 등에 대해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한다는 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물론 의료계도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을 깨달은 것은 사실”이라며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우선은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격의료 플랫폼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도 재진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초진으로 확대한 만큼 어차피 가야 할 길을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격의료 도입 논의까지 20년 걸렸다. 초진까지 가는 데 또 20년 걸릴 것”이라며 "재진으로 제한할 경우 환자들의 편의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김병준 기자 econ_j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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