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위기다
말과 행동 다를 때 신뢰 추락
'불신의 늪' 빠지면 백약이 무효
관치 유혹 못 벗어난 경제팀
집단사고 위험성 직시하고
창의적·전략적 발상 내놔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여론조사가 나왔다. “지지율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 초기란 점과 경제위기 속 지지율이란 점을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로고스(논리)’만으로는 안 되고 ‘에토스(신뢰)’ ‘파토스(감성)’도 필요하다는 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이다. 에토스가 떨어져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이라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그것으로 국정은 끝장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위기 국면에서 리더십이 흔들리면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지지율 불안이 야당과의 협치를 더 어렵게 하고 여당 내 조기 권력투쟁을 불러오는 요인이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정치 상황이다. 정치권의 시계가 벌써부터 2024년 4월 총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대로 나라가 정치투쟁, 권력투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다. 가뜩이나 글로벌 실물·금융 동반 위기에 처한 경제는 그야말로 희망이 사라질 게 뻔하다.
유능한 정부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세계적 경제 위기라서) 근본 해법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독일의 정치·사회·경제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한 바 있는, 하늘이 준 일상적이지 않은 자질을 가진 ‘카리스마’를 국민이 바라는 게 아니다. 국민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가득한 환경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속에서도 경제주체들이 희망을 갖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대통령이 ‘비저너리 리더십’을 보여주길 원한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 믿음은 추락한다. 전 정부 탓도 계속 되풀이하면 변명으로 들리고, 결국에는 무능하다는 고백밖에 안 된다.
유능한 인물들로 짰다는 경제팀의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기반한 경제 운용’이라는 기조 아래 △경제 운용을 정부에서 민간·기업·시장 중심으로 전환 △민간의 자유·창의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 완화 △정부는 과도한 시장 개입을 지양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 등을 적시했다. 그런데 잉크도 마르기 전에 대놓고 은행 이자를 비난하고, 기업 임금 문제에 개입한다. 앞에선 자유시장경제를 말하고 뒤로는 ‘관치’를 하는 것과 진배없다. 경제 체질을 바꾸자고 해놓고 가격 통제 등 후진적인 물가관리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 파티의 호스트가 누구였나. 어떤 정권도 공기업 파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가 공기업 거버넌스의 최고 정점이요, 경영과 평가를 모두 해온 주체다. 그런 정부가 ‘공기업 실패’는 ‘정부 실패’라는 본질은 제쳐두고 사돈 남 말 하듯 한다. 공기업 개혁을 하겠다면서 민영화는 절대 없다는 것도 그렇다. 시대가 바뀌고 경제구조가 변해도 ‘한 번 공기업은 영원한 공기업’이라면 경제 운용을 정부에서 민간·기업·시장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약속은 뭔가. 말짱 거짓말이 된다. 공기업 개혁에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노동개혁, 규제개혁, 교육개혁도 소리만 요란할 뿐 창의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전략 없는 개혁’은 실패한다. 정부가 지금은 물가를 걱정하지만 이후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구조개혁이 절박한데도 경제팀의 대응은 과거 방식에다 즉흥적·파편적 수준이다.
‘언어’는 ‘사고’로 바로 연결된다. 경제팀의 언어가 과거로 회귀한다는 것은 사고가 과거에 갇혀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자유로운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공염불이 된다. 관(官)과 민(民)의 권력 격차가 크다는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경제팀이 아웃사이더를 영입하든 민간의 지식을 빌리든 창의적 발상을 해야지, 이대로 가면 집단사고의 위험성은 커지고 문제해결 능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말 것이다.
구조개혁 과제 중에는 야당도 피해 가기 어려운 것이 적지 않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절박함을 갖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면 야당이 던진 ‘정파초월 비상경제대책회의’ 제안을 못 받을 이유가 없다. 야당과 협치를 해서라도 경제위기를 극복하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희망이 있고, 그 반대면 희망이 없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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