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올랐는데 회사원이 봉이냐?"..'임금 인상 자제' 추경호 발언에 뿔난 직장인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윤기은 기자 2022. 6. 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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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기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중소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3년차 직장인 김모씨(30)는 2주 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연말 상여를 뺀 그의 월급은 세후 280만원으로 여기에 중식 식대 15만원이 포함돼 있지만 물가 상승으로 외식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29일 “작년 말과 비교하면 한끼 식사비가 1000~2000원 오른 것 같다”며 “기름값도 많이 올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김씨가 허리띠를 졸라맨 건 물가상승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은행에서 전세자금 2억1600만원을 대출받아 수도권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데, 최근 금리가 올라 매달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20만원가량 늘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출 금리가 2.77%로 한달에 이자가 49만원대로 유지됐다”며 “지난 3월부터 금리가 3%대로 오르더니 지금은 3.99%다. 이자가 70만원대로 뛰면서 월급의 25% 이상 나간다”고 했다.

이처럼 고물가와 금리 상승으로 가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계에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세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한 말인데, 직장인들은 “실질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중소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확대해 근로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는 추 부총리의 지적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이 많다.

김씨는 추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사실상 월급만 빼고 전부 다 오른 마당에 공감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는 “물가가 내려가면 그때는 임금 인상을 독려할 것인지 궁금하다”며 “(추 부총리가) 상대적 박탈감을 언급했는데, 대기업 직원들 연봉 인상 소식에 그렇게까지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걸 보면 허탈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29일 서울의 한 식당 가격표에 메뉴별로 1000원 인상된 가격표가 덧붙어 있다. 연합뉴스.

추 부총리가 과도한 임금 인상의 주체로 지목한 ‘일부 IT’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속사정도 모르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IT 대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직원 평균 임금을 각각 10%와 15% 인상했다.

카카오 직원 A씨는 “업계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었다”며 “인재 유출 경쟁도 있지만 카카오의 경우에는 무더기 상장과 경영진의 ‘주식 먹튀’ 논란이 한몫했다. 임원진들은 코로나 특수를 다 누렸는데 직원들은 임금 올렸다고 바로 말이 나오는 게 우습다”고 했다. 네이버 직원 B씨도 “그동안은 기본급 인상폭은 낮고, 성과급 비중이 높았다. 이런 급여 시스템이 노동 안정성을 해치고, 개발과 비개발 직군 사이의 임금 격차를 벌린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번 임금 인상은 주식이나 스톡옵션이 아닌 기본급 인상을 요구해온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선 추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LG생활건강의 한 직원은 “매번 다른 게 오를 때마다 임금만 못 오르게 막는 건 결국 급여 직장인들이 희생하라는 뜻 아니냐”며 “이게 보수 시장주의자들이 할 얘기가 맞나”라고 했다. 롯데호텔의 한 직원은 “흙수저들을 그나마 중산층 언저리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까지 걷어 차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밖에 “직장인이 봉이냐” “당신들부터 무보수로 일하라”는 반응이 나왔다.

추 부총리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고 한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하는데 사실상 파티를 준비조차 한 적 없다’는 반박글이 화제가 됐고,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공공기관 부채 문제는 직원의 방만함이 문제가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지침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 인상은 가계소비 여력을 늘려 수요를 높이고, 기업의 한계비용(물건이나 서비스를 하나 생산할 때마다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상승시켜 물건값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이번 인플레이션은 임금 때문이라기보다 해외 경제 여건과 한국 정부의 늑장 대응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최소한으로 올리면 저소득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금리와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가계 이자상환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민간 주도 경제’를 공언한 윤석열 정부가 권위주의 정권의 ‘관치경제’ 때처럼 재계에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법인세, 종부세, 양도세 등은 내리고 공공요금은 올리는 상황에서 (임금과 관련된 발언을 한 것은) 추 부총리가 지금의 경제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에 우회적으로 압박을 주려는 의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고 말했다.

이유진·윤기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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