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갯벌서 발견된 조선 왕실 기와, 완전체 첫 공개

류재민 2022. 6. 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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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기와 '취두'(鷲頭)가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공개됐다.

검파는 지난해 같은 곳에서 출토됐던 또 다른 취두의 짝으로, 조선 전기 취두가 검파까지 완전체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용무늬는 조선 전기에 왕실이 사실상 독점 사용했다는 점에서 취두와 검파, 장수상이 왕실 관련 건축물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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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검파를 꽂은 취두의 완전체를 선보이고 있다. 류재민 기자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기와 ‘취두’(鷲頭)가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5월 충남 태안 갯벌에서 발굴한 용머리 장식 기와 상단과 취두 상단에 부착하는 칼자루 모양의 장식품인 검파(劍把)를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한 취두 상단은 2019년 조개를 캐던 주민이 발견했던 취두 하부와 짝을 이루는 것이다. 검파는 지난해 같은 곳에서 출토됐던 또 다른 취두의 짝으로, 조선 전기 취두가 검파까지 완전체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鷲)는 독수리, 두(頭)는 머리로 취두란 독수리 머리를 뜻한다. 지붕에서 하늘과 연결되는 부분의 장식으로 고려 중기부터 조선말까지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식은 이번에 출토된 것과 차이가 있지만 창경궁 명정문, 창덕궁 인정문 등에도 취두를 볼 수 있다.

조사발굴 위치도. 문화재청 제공

연구소는 2019년 주민에 의해 출토된 장수상이 조선 전기 양식을 띠고 있고, 취두와 검파가 같은 지역에서 수습됐다는 점에서 같은 시기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용무늬는 조선 전기에 왕실이 사실상 독점 사용했다는 점에서 취두와 검파, 장수상이 왕실 관련 건축물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같은 곳에서 나왔지만 취두 2쌍은 각도나 문양 면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김동훈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서울 용산 일대 와서(조선시대 기와 담당 관서)에서 제작해 충청 이남 지역으로 옮기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충청 이남 지역의 왕실 관련 시설이 많지 않아 현재로서는 태조의 어진이 있던 전주 경기전, 경주 집경전을 위한 취두였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왕실 관련 사찰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취두는 전체 높이가 103㎝이며 가로 길이는 83~85㎝, 두께는 22㎝다. 검파는 길이 40.5㎝, 폭 16㎝, 두께 7㎝ 크기다. 취두는 상단과 하단 각각 50~60㎏, 검파는 4.2㎏으로 취두와 검파까지 합친 완전체의 총 무게는 120㎏에 달한다.

2019년부터 태안 갯벌에서 출토된 취두와 검파, 장수상. 류재민 기자

검파는 앞뒷면에 2단으로 구름무늬가 표현돼 있고, 취두 상단의 방형 구멍과 결합하도록 짧은 자루도 갖추고 있다. 김성구 전 경주박물관장은 “화재 방지를 위한 차원에서 물을 다스리는 용을 올렸는데, 게을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운검을 꽂은 것”이라며 검파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김 학예관은 “취두에 표현된 용이 지붕을 물고 있어 용마루를 갉아먹지 말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면서 “빗물이 취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에 따라 경복궁 창건기 건물 및 숭례문, 양주 회암사지 등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의 세부 모습에 대한 실질적인 고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참고할 자료가 많이 없어 왜 태안 갯벌에 묻혔는지 등에 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양기홍 학예연구사는 “숭례문의 서쪽 취두가 이번에 발굴된 취두와 가장 유사하다”면서도 “조선 궁궐들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게 많아 현재 남은 취두는 이번에 발굴된 취두보다 크기도 작고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다. 향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취두와 검파는 왕실 특수 기와 연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 전 관장은 “수중 고고학 최고의 성과”라며 “나중에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없는 소중한 유물이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8월 중순까지 해당 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와 왕실 장식 기와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심화 연구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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