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내 딸을 위해 더 직설적 방식의 글이 필요했다"
2021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제 책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억압과 차별을 당하는 모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계 미국 이민자 2세대로서 겪은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로 화제를 모은 작가 캐시 박 홍(46)이 차기작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세미나 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이 책을 읽고 한국의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소수적 감정’은 어느 집단에서든 지배적 문화에 따른 억압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러한 경험을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찾은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그는 그 사이 한국이 “더 디지털화되고, 카페가 많아지고, 디저트도 풍족한” 곳으로 변했다며 웃었지만, 아마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책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대거 생겼다는 점일 테다. 지난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를 수상하는 등 미국 평단의 찬사를 받은 <마이너 필링스>는 현재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 A24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책 출간 이후 캐시 박 홍 작가는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지난 8월 한국어판 출간 이후엔 국내 독자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열광했다. 사회적 소수자로 지목된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짜증, 수치심과 우울감을 ‘소수적 감정’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그의 글에 공명했기 때문이다. 캐시 박 홍은 “여성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고, 삶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8일 자신이 “숭배”하는 김혜순 시인과 만나 페미니즘과 시인의 삶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다”며 “단순히 한 인종으로서가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의 삶과 내면의 복잡성까지 재현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나리>나 <파친코> 같은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그린 문화 콘텐츠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생산된 가요와 영화의 인기도 치솟고 있는 현실이다.
캐시 박 홍은 이러한 현상에서 미국 사회의 “다양성 변화”를 읽어냈다. 그는 “2040년이면 미국의 인구 구성에서 유색인종이 백인을 앞지르게 된다”면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사회 운동과 더불어 TV 등 대중매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계 미국인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는 내내 영어로 말을 이어갔지만, 간혹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발음했다. 책에 “서툰 영어는 나의 유산”이라고 적었던 그는 이날 만남에서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나는 창피해요, 한국어를 말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서툰 영어와 서툰 한국어가 ‘짬뽕’된 말이 내 언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버지 성(홍)과 어머니 성(박)을 딴 그는 애초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시 세계는 이중 언어 화자로서의 정체성 실험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이너 필링스>를 (시가 아닌) 자서전 형식으로 쓰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전이었다”면서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이후로, 또 엄마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내 딸을 위해, 사회를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더 직설적 방식의 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캐시 박 홍은 이날 “차기작은 엄마와 딸에 대한 산문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한국에서 강연·북토크 등 독자와의 만남뿐 아니라 차기작을 쓰기 위한 인터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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