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시아·여성 SFO 음악감독 김은선 "어느 무대든 모든 레퍼토리가 도전"

이강은 2022. 6. 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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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지휘자 김은선. 서울시향 제공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이 ‘50살이 넘어야 스스로를 지휘자라고 소개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죠. 지휘자는 무르익어야 하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젊은 지휘자들에겐 도전이죠. 어느 무대든 모든 레퍼토리가 제겐 항상 도전이에요.”

‘첫 여성 음악감독’, ‘첫 아시아 음악감독’

2019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더 메트)에 이어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SFO) 음악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세계 클래식계 주목을 받은 주인공. 미국 주요 오페라단을 여성이자 아시아 출신이 이끄는 건 최초였다. 지난해 더 메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지휘한 뒤 극찬을 받고 그해 12월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의 샛별’로 배우 이정재와 함께 선정된 지휘자 김은선(42)의 얘기다. 이런 화제성을 뒤로 하고 명 지휘자 반열에 오르기 위한 여정을 성급하지 않게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11년 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바리톤 연광철과의 무대 이후 11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서게 된 그는 28일 열린 화상 언론인터뷰에서 “한국에 일하러 가는 건 처음이다. 기대가 많이 된다”며 밝게 웃었다.

세계 주요 연주 무대에 서며 반짝이는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온 김은선은 지난해 8월 임기 5년의 SFO 음악감독에 공식 취임했다. 자주 들어서 질릴 법도 한 질문이지만 이번에도 또 나왔다. ‘여성·아시아 출신 지휘자로서 장벽이 없었느냐’고 묻자 ‘질리게’ 해왔을 답변을 내놨다. “(외국) 현지 인터뷰에서도 이런 질문을 꼭 받는데, 기자들을 리허설 현장에 꼭 초대하고 싶어요. 리허설이나 연주할 때, (지휘자의 성별이나 출신 지역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오페라단에선)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렇게 이슈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신경쓰지 않지만), 관객이나 외부에서는 그게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아요.” 

그는 “바깥에선 아시아계 여성 지휘자가 이슈일 수 있어도, 음악인들과 일할 땐 장벽이 되지 않는다”며 “지휘할 때 저는 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동양인 여성으로 비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곤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여성 관객과 연주자들에게 응원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젊은 세대에게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 연주가 끝나면 여성분들이 오셔서 ‘당신이 포디엄(지휘대)에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함을 느껴요.” 이어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당시 그 공연을 끝으로 은퇴하는 할머니 비올라 연주자를 화장실에서 만났는데 (그분이) ‘평생에 여자 화장실에서 지휘자를 만날 줄은 몰랐다’며 좋아하셨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사회에 변화를 주고 있다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취임 1년을 맞는 소회는 어떨까.  “저는 성격이 길게 보는 걸 좋아해서, 항상 마지막 공연까지 어떻게 페이스를 유지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 목표는 (계약기간 마지막인) 5년째에 오페라의 예술적 변화가 얼마나 될지를 상상하면서 지금 해나가는 과정입니다.”

가을에 새 시즌을 시작하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도 창단 100주년을 맞이 김은선도 바빠질 수밖에 없다. 100주년 기념곡으로 의뢰한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세계 초연 오페라를 비롯해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등을 선보인다. 내년 여름엔 오페라단 역사를 함께해온 전임 지휘자 및 주요 아티스트와 갈라 콘서트를 예정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내한 공연도 기대하고 있다. “실제 저희 오페라단도 꿈꾸고 있어요. 단원들도 방탄소년단 등 K-팝과 한국 문화, 음식을 잘 알고 있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해요. 제가 상임 지휘자가 된 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김은선은 7월21∼22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가 미국에서 활동하며 쓴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를 들려줄 예정이다. 2019년 해외 무대에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부터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에서 지휘해온 곡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데뷔도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였어요. 한국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 드보르자크 곡을 하고 싶었죠. 한국 관객들은 어떤 외국의 작곡가든 그 정서에 녹아들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요. 음악은 제 손을 떠나는 순간 관객들의 것이지요.”

작곡가 김택수가 같은 이름의 유명 탁구선수에게 착안해 탁구 게임을 그려낸 곡인 ‘스핀-플립’도 연주한다. “관중의 환호도, 스매싱도 있다. 굉장히 재미있는 곡”이라고 귀띔했다. 스위스 출신 크리스티안 폴테라는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는 “내년부터 바그너·베르디의 오페라, 클래식 오페라 등 제 레퍼토리를 쌓아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세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한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한 김은선은 2008년 스페인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면 당장의 어떤 무대보다 길게 봐야 하죠. 작곡에서 지휘로 바꿀 때 고민하는 제게 선생님(최승한 교수)께서 그 길을 가보기 전엔 알 수 없다고 했어요. 살아보고 뒤돌아봤을 때 그 길이 제 인생을, 선택을 설명해준다고 했죠. 제겐 큰 힘이 됐어요. 저도 그 말을 다음 세대에게 해주고 싶어요.”

김은선은 최근 임윤찬 등 젊은 한국인 연주자들의 잇단 쾌거로 관심을 모은 콩쿠르와 지휘자 시스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저도 콩쿠르를 우승한 경험이 있지만, 그게 객관적인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콩쿠르 입상 여부는) 그날의 (연주자)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예술 자체에 객관적인 등급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쿠르가 (연주활동 등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콩쿠르를 1등 했다는 사람 중에도 사라진(잊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 지휘자는 경험을 당연히 많이 쌓아야 하고, 저도 독일에서 공부할 때 한 학기에 최소 세 번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선생님들께) 많이 깨지기도(혼나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도 음대 지휘과 학생들이 프로 오케스트라와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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