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수련 연못에 핀 황금 연꽃부터 페미니즘적 미래주의 설치 작품까지

김종목 기자 2022. 6. 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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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톰 삭스, 타이 샤니..3인3색의 해외 입체미술 작가들 국내 동시 전시

“미술관을 나서서 거리로 나가는 비전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예술과 작가는 퍼블릭(public, 공공)을 만나기 위해 나가야 한다.” 16일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8월 7일까지, 무료) 보도자료에 나온 작가 말이다. 오토니엘의 지향이 대중과 부응하는 곳이 미술관 옆 덕수궁의 연못 경운지다. 2000년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 이어온 ‘공공 야외 설치 작업’ 연장선에 놓인 작품을 이곳에 설치했다. 스테인리스에 손으로 금박을 입힌 ‘황금 연꽃’을 연못에 띄웠다. 가운데 작은 섬에 심긴 나무에 같은 재질의 ‘황금 목걸이’를 달았다. 서소문 본관 야외 조각공원에도 ‘황금 목걸이’를 설치했다.

장 - 미셸 오토니엘, ‘황금 연꽃’(맨 왼쪽은 2019, 가운데와 오른쪽은 2021). 김종목 기자

관람객들을 끄는 건 분명하다. 지난 21일 이곳을 찾았을 때 만난 덕수궁 직원은 “이 작품을 보러 많이들 온다. 평소보다 10%가량 입장객이 는 듯하다”고 말했다.

장-미셸 오토니엘, ‘황금 목걸이’(2021). 김종목 기자

오토니엘 특유의 ‘블링블링(bling-bling)’ 한 작품들엔 메시지도 담겨있다. 미술관은 ‘황금 연꽃’을 두고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혼탁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고통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랐던 불교문화의 메시지를 불러오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마법의 손길을 더해 연꽃에 동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고 설명한다. 연꽃 개화 시기인 7~8월엔 진짜 연꽃과 ‘황금 연꽃’이 어우러질 듯하다.

장-미셀 오토니엘, ‘루브르의 장미’(2019, 왼쪽 벽면 3점)과 ‘자두꽃’(2022). 김종목 기자

덕수궁은 여러 모로 작가에게 영감을 준 공간이다. 신작인 회화 ‘자두꽃’은 덕수궁 석조전 페디먼트 등 여러 곳에 새겨진, 다섯 장 꽃잎 모양의 자두꽃(오얏꽃)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미셸 오토니엘, ‘푸른 강’(2022). 김종목 기자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에 74점을 출품했다. 미술관은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라고 했다. 서소문 본관 실내 전시관에 설치한 길이 26m, 폭 7m의 ‘푸른 강’도 최대 규모다. 인도 유리 장인들과 협력해 제작한 피로지(Firozi, 인도어로 구릿빛 푸른색을 뜻한다) 벽돌 수는 7500여 장이다. 이글루나 고대 유적을 떠올리게 하는 ‘아고라’도 스테인리스 벽돌 2760개로 만든 작품이다.

장-미셸 오토니엘, ‘아고라’(2019). 김종목 기자

작품들은 ‘우주’ ‘마법’ ‘시’ ‘영원’ ‘희망’ 같은 단어로 수식된다. 유리 벽돌 육면체 부조 형태의 ‘프레셔스 스톤월’ 연작엔 ‘코로나19 극복 의지와 미래’를 담았다. 제목엔 현실 문제도 녹아 있다. 1969년 미국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단속 과정에서 벌어진 성소수자들의 ‘스톤월 항쟁’에서 제목을 따왔다. 오토니엘은 같은 해 사망한 ‘LGBTQ 아이콘’ 주디 갈란드가 출연한 <오즈의 마법사> 중 ‘노란 벽돌길’ 장면을 연계한 ‘프레셔스 스톤월’을 선보인 적도 있다. 연작의 일렁이는 반사광은 “(오토니엘이) 힘 없는 개개인이 발휘한 극복 의지와 해방감을 공유”하며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장-미셸 오토니엘, ‘프레셔스 스톤월’ (2022, 연작 중 한 작품). 김종목 기자

최근 한국 미술계엔 유명 해외 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진다. 여러 입체 작품을 들고 입국한 또 다른 유명 작가는 미국의 톰 삭스다. 오토니엘은 미술관과 협업하고, 여러 비엔날레에도 작품을 낸 이른바 ‘미술관 작가’다. 공공 미술을 강조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삭스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내세운 작가다. 그의 작업엔 ‘돈’ ‘소비’ ‘산업’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자신을 ‘물질주의 사회에 사는 물질주의자이자 소비주의자’로 규정한다. 나이키와 협업해 한정판 신발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21일 언론 공개 행사 때 스태프들이 록 그룹 스태프처럼 삭스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한국 전시도 순회 콘서트처럼 시끌벅적하다. 서울 종로 아트선재센터에서는 ‘NASA-인독트리네이션 전(8월 7일까지)’, 서울 용산의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에서는 ‘로켓 팩토리 페인팅 전’(8월 20일까지)’, 용산의 복합문화공간 하이브 인사이트에선 ‘붐박스 회고 전’(9월 11일까지)이 열린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와 제이홉,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등 유명인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톰 삭스, ‘메리의 우주복’(2019). 왼쪽 로켓 모양 작품은 ‘새턴 5호 달 로켓’(2011). 김종목 기자

‘브리콜라주와 DIY 미학’ 같은 삭스를 규정하는 작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아트선재센터다. 회화, 설치, 영상 등 53점이 나왔다. 조각가, 디자이너, 공상가의 면모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달 탐사는 20세기 최고의 미술 프로젝트였다.” 아트선재센터는 작가의 이 말을 내세우며 “건축 자재와 발견된 오브제를 이용해 인간의 욕망, 우주라는 허구적 신화, 은하계에서 우리의 장소를 재맥락화한 작가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교육학적 재구성”이라고 소개한다. 전시 제목에 들어간 ‘인독트리네이션(Indoctrination)’은 ‘주입’ ‘교화’ ‘세뇌’를 뜻한다.

‘달 박물관’ 섹션에 나온 톰 삭스 작품들. 김종목 기자

1전시장은 삭스가 2007년부터 시작한 ‘스페이스 프로그램’과 관련한 작품들을 ‘특수 효과’와 ‘달 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인 섹션으로 구성했다. 여성 우주인 메리의 우주복 ‘메리의 슈트’, 새턴 5호와 발사대를 미니어처로 만든 ‘발사’ 같은 작품을 배치했다. 공사장 작업용 헬멧과 고글 등을 재조합해 만든 ‘카부토(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도 전시한다. 합판, 테이프, 접착제, 배터리, 덕트 테이프, 플라스틱 같은 일상 재료를 갖고 브리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2전시장은 ‘회화 같은 조각’ 작품을 전시한다. 백남준의 ‘TV 부처’를 오마주한 신작 ‘TV 요다’도 처음 공개한다. “백남준의 유토피아적 시각을 좋아한다”는 삭스는 “소비주의의 부처를 요다로 해석했다. 요다는 쇼핑을 하러 가야 하기에 백남준의 부처와 달리 서 있다”고 설명한다.

톰 삭스, ‘TV 요다’(2022). 김종목 기자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 NASA 로고나 성조기 같은 상징물로 작업한 작품들이 비판이나 풍자인지, 찬양인지 종잡을 수 없다. 다만 삭스는 “NASA는 궁극의 패션 브랜드이자 과학계의 샤넬”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삭스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나사의 우주 프로그램은 냉전 시대 프로그램이었다. 패권국을 상징하는 힘이었다”면서도 “로켓이 자본주의만을 위한 표상은 아니다. 삶의 소중함, 지구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라고 했다. 유한한 몸과 마음 너머 무한한 존재가 우주라고도 했다.

김장언(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자본주의를 찬미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희극으로 각색한다. 기계주의를 경외하면서도 조롱한다. 동시대 물질문화와 소비문화를 가로질러 우주의 조화를 상상한다”고 설명했다.

2019년 터너상 공동 수상자인 타이 샤니의 ‘네온 상형문자: 공동체 저변에서’ 전(7월 9일까지)의 주요 출품작도 입체미술이다. 용산 다울랭 갤러리 개관전에 나온 조각과 설치 작품은 유명 남성 작가들과 결이 다르다. 옥타비아 버틀러 등의 ‘페미니즘 공상 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을 두고 ‘페미니즘적 미래주의’라는 평가가 나왔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1792)보다 4세기나 앞선 페미니즘 저작의 효시라 꼽히는 크리스틴 드 피장의 <여성들의 도시>(1405)도 작업에 영향을 줬다. 샤니는 유년을 인도 고아(Goa)의 공동체에서 보냈다. 환각제가 일상의 일부였던 그 공동체 경험도 작품에 녹였다. 자발적 민중 운동이 벌어지던 곳이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신화, 마술, 환각, 공산주의, 페미니즘 같은 말로 샤니의 작품을 해설한다.

타이 샤니, ‘NHA 8’(2022). 김종목 기자

신작 ‘NHA 8’은 마녀 같기도, 광인 같기도 한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몸통뿐인 기괴한 모양의 여성상이다. ‘남성 전쟁 영웅’ 등을 두고 샤니는 “(난폭한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의 동상은) 우리 주변에서 (과거를) 상기하는 폭력의 유령이 된다”는 말을 했는데, 그 주류 동상의 반대 지점에 놓인 조각 같기도 하다.

벽면은 타이 샤니 ‘NH Wall’ 연작 중 한 작품(2022), 바닥은 ‘NHA 10’(2019)이다. 김종목 기자

오토니엘은 1964년, 삭스는 1966년, 샤니는 1976년 생이다. 이들은 각각 해외 문화예술과 경제의 유력 도시인 파리, 뉴욕,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들 말고도 최근 여러 유명 작가들이 방한했다. 미술계는 이들의 한국행은 이른바 ‘K 문화 부흥’과 ‘해외 작가에 대한 관심’ ‘한국 미술계 위상 제고’에다 ‘관세 면제인 미술품’ ‘젊은 고액 컬렉터들의 등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본다.

[기자칼럼]갤러리 가는 길
“메뉴판이 입구를 가로막았다. 까만색 유리문이라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업종을 바꿨을까? 문을...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80604205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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