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역, 우리금융역, KB금융역..서울 지하철역 이름 바뀌는 이유는

허지윤 기자 2022. 6. 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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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역은 우리금융, 을지로입구역은 하나은행, 선릉역은 애큐온저축은행이 낙찰
"반복된 노출로 브랜드 친숙도 높인다"

“이번 역은 을지로입구, 하나은행 역입니다.” “이번 역은 명동, 우리금융타운역 입니다.” “이번 역은 샛강, KB금융타운역 입니다.”

서울 지하철역 여러 곳에 금융회사 이름이 박히고 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판매하는 서울 지하철역명 병기(倂記)권을 금융회사들이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 회사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역 이름을 사들이고 있다. 브랜드 관리가 중요한 금융지주는 물론이고 은행, 카드, 저축은행에 KDB산업은행도 역 이름 병기권을 매입했다.

서울 지하철 샛강역, KB금융타운. /KB국민은행

29일 서울교통공사와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이달 1~3차 걸쳐 42개 서울 지하철역명 병기 유상판매 입찰을 진행 중이다. 지하철역 각종 안내판과 안내방송 등에 지하철역명과 함께 기관명을 쓸 수 있는 광고 기회를 입찰을 통해 민간에 파는 것이다. 입찰 대상 기관·회사는 대상 역에서 최대 1㎞ 이내에 위치해야 한다. 환승역, 유동인구 등 조건에 따라 역마다 최저 입찰가는 다르게 책정해 입찰이 진행된다. 역명 병기 계약 기간은 향후 3년으로, 1회에 한해 3년 간 연장될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6년부터 역 이름을 민간에 판매하고 있다.

적자를 메꾸기 위해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로선 금융사가 단연 귀한 손님이다. 지난 27일과 28일 공개된 총 28개 역명에 대한 1, 2차 입찰 결과를 보면, 대부분 유찰됐다.

서울 14개 지하철역명에 대한 1차 유상판매 입찰 결과, 4호선 명동역과 2호선 을지로입구역 단 2곳만 낙찰자를 찾았고, 나머지 12곳은 최종낙찰자를 차지 못했다. 낙찰된 2개역을 ‘우리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이 차지했다. 우리금융은 6억5466만8075원에, 하나은행은 8억원에 각각 낙찰받았다. 하나금융그룹의 경우,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 낙찰에 앞서 인천국제공항철도선 ‘청라국제도시’역 병기권도 따내 지난 4월부터 3년간 청라국제도시역과 ‘하나금융타운’을 함께 쓴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과 2호선 강남역 등이 포함된 14개역명에 대한 2차 판매 입찰 결과도 2호선 선릉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유찰됐다. 2호선 선릉역명 병기 기회를 잡은 최종 낙찰자는 ‘애큐온저축은행’으로, 7억5100만원을 썼다.

현재까지 낙찰가가 가장 큰 역은 2호선 을지로3가역으로, ‘신한카드’가 지난 1월 8억7400만원에 낙찰받았다. 지난해 9월 이름이 판매된 지하철 2·5호선 을지로4가역은 ‘BC카드’가 7억원에 차지했다.

지하철 역명에 낙찰기관 이름 함께 기입된 지하철역. /서울교통공사 제공

작년 4월부터 9호선 ‘국회의사당’역은 ‘KDB산업은행’과 명칭을 함께 쓰고 있다. KB금융은 2020년 지하철 9호선 샛강역명 병기 유상 판매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돼 샛강역과 ‘KB금융타운’을 함께 쓰고 있다. KB국민은행 통합 신사옥이 샛강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다. 서울 지하철1호선 종각역명은 ‘SC제일은행’이 2017년부터 종각역 명칭과 함께 쓰고 있고, 계약을 연장해 내년 7월까지 사용한다.

타 업종에 비해 금융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하철역명 병기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인데,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친숙도’를 높이려는 게 주 목적이다.

SC제일은행은 “종각역 역명 병기를 시작하고 2년 6개월 간 브랜드 인지도가 3%포인트(p) 올랐다”고 분석했다.

한 금융그룹 브랜드전략본부 임원은 “지하철역은 남녀노소가 모이는 가장 대중적인 장소이자, 수많은 유동 인구가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라면서 “지하철역 안내판과 음성 안내 방송 등에 이름을 자주 노출시켜 대중 친숙도를 더 높이겠다는 취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나 패션 등 다른 업종은 광고마케팅에서 고급화 전략이 중요하다면 은행은 대중적 친숙도가 더 중요한 특성이 있다”면서 “은행 이름은 이미 다 알지만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더 깊숙이 녹아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지하철, 유튜브, TV, 신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반복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찰 시장에 나온 지하철역명 대부분이 유찰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사들이 다소 통 큰 배팅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마곡역 ‘홈앤쇼핑’ 낙찰가가 1억1100만원이고, 신용산역 ‘아모레퍼시픽’ 낙찰가가 3억8000만원이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금융사들이 2배 이상의 비용을 쓴 셈이다.

하지만 금융사로선 부담스러운 비용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투입 비용 대비 노출 빈도와 광고 효과 면에서 그만한 효용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유동 인구와 노출 시간과 빈도, 투입 비용 등 감안하면 TV나 옥외 전광판 광고 등에 비해 가성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사 임원은 “지하철역명 병기를 통해 일반 대중에 대한 광고 효과 뿐 아니라, 우리 직원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본사를 방문하는 고객과 해외 바이어(Buyer)에도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금융그룹 제공

한편, 금융과 정치 1번지로 불리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인 여의도역(5·9호선)과 여의나루역(5호선) 이름을 두고 벌이는 입찰 경쟁도 업계의 관심을 모은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5호선 강동역과 여의나루역, 여의도역, 7호선 논현역, 학동역 등을 포함한 14개 역명에 대한 3차 판매 입찰을 개시했다.

여의도 일대에는 금융감독원, 국회의사당, 여의도우체국, 한국증권거래소, KB국민은행 신관, 신한금융투자타워, 한화손해보험빌딩, SK증권 본점, 서울국제금융센터(IFC), 파크원 등이 모여 있다. 작년 기준 여의도역(5·9호선)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8만2437명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하루 평균 이용객이 9만2136명이었다. 5호선 여의나루역은 작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1만9662명이 이용했다.

여의도 소재 금융업계 관계자는 “여의도가 갖는 상징성과 유동 인구 등을 고려하면 다른 역보다는 낙찰가가 높고, 입찰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파크원에 있는 더현대서울(백화점)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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