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34] 싸~한 느낌은 어김없어.. 종주 마무리 앞두고 대형 알바

글·사진 성예진(스윗밸런스 광화문점장) 2022. 6. 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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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고개~노고산~옥녀봉~숫돌고개~견달산~문봉동재~고봉산~고인돌산림욕장~장명산 47km
고봉산에서 이정표를 살피고 있다. 낮은 산이라 방심했는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했다.
편의점까지 왔으니 고봉산까지 거의 다 온 셈이다. 206m 고지의 고봉산만 지나면 다음은 한북정맥의 마지막, 장명산이다. 고봉산에서 또 한참을 도로를 걸어 도심을 지나야 하지만 장명산을 보기 위해 저 멀리 강원도 화천에서부터 달려왔으니 이 정도쯤은 껌이랄까.
고지만 두고 보더라도 두 산 모두 동네 뒷산 수준의 야트막한 산이기에 이제는 정말 끝인 것처럼 느껴진다. 거리상으로 오늘 걸어온 길의 절반, 15km는 더 가야지만 산길은 5km가 채 되지 않을 테고, 남은 길을 생각하니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편의점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고봉산으로 향한다. 3분 남짓 걷는 길의 끝에 원각사가 나오는데 원각사까지 쭉 평지길이다. 이럴 때면 거저먹는 기분이다. 원각사 맞은편 빌라 뒤편 산길로 진입한다. 이곳에서 길을 조금 헤맨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헤매면서도 또 어찌어찌 길을 잘 찾아간다.
군부대가 보인다. 헤매다가 만난 군부대가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는 군부대가 보이면 길이 맞을 것 같아서 묘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부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데 저 멀리 철탑이 세워진 고봉산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그리 높지 않아 보여 휘파람을 불며 다가간다.
한창 걷고 있는데 월간山 기자님께 전화가 왔다. “우리 예진이 마지막인데 응원하러 가야지”라며 장명산으로 오겠노라 이야기한다. “아이~ 뭘 또 이렇게까지! 주말인데 마중까지 나오시려고요”하고 투덜거리지만 고마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모처럼 주말에 쉬는데 온다고 하니 괜히 고생하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분은 숨길 수 없다.
장명산에 도착할 것 같은 대략적인 시간을 알려드리고 일단 고봉산을 벗어나 다시 연락하기로 한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여유롭게 시간을 잡았다. 먼저 도착하면 좀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넉넉히 잡았다. 예상보다 두 시간은 더 잡고 시간을 알려드렸기에 여유가 많다. 전화를 끊고 한껏 들떠 걷는다. 누군가 응원을 온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짙은 숲길이 걷고 싶어, 수연약수터 방향 산길을 택했다.
잘 포장된 임도를 따라 만경사로 올라간다. 만경사는 자그마한 절이다. 모처럼 시간도 많은데 절에 들어가 볼까? 생각해봤지만 절이 작인데다가 민가같이 생긴 모양새에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큰 절이었으면 법당에 들어가 봤을 텐데 외부인이 출입해도 되는지 몰라 입구에서 슬쩍 보기만 했다.
장명산 도착을 오후 1시로 알려드렸고, 만경사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이 오전 8시쯤이었으니 여유가 많다.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여유를 즐겨본다. 장족의 발전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움직였는데 오늘은 비교적 여유롭다. 시간이 넉넉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긴다.
만경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한쪽은 영천사로, 다른 한쪽은 수연약수터로 가는 길이다. 인터넷 후기에서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다고 했던 것 같아서, 어느 길로 갈지 고민했다. 서로 원하는 곳으로 가도 된다며 아웅다웅한다. 영천사로 가는 길은 만경사를 오르는 길과 마찬가지로 임시포장도로이고, 수연약수터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포장된 도로보다 산길을 좋아하는 우리는 약수터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약수터 이름이 ‘수연약수터’라 언니 이름과 같아서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산길로 걷고 싶었던 거라, 영천사로 가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이 길을 택한 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삼거리 바로 옆 나무에 ‘순환코스’ 그림이 그려져 있다. 크게 ‘고양 고봉누리길’이라 적힌 지도에는 순환코스가 그려져 있는데 살펴보니 영천사와 수연약수터 가운데 ‘진밭’이 있다. 진밭이 마치 날머리처럼 그려진 모양새라 지레짐작으로 진밭이 고봉산의 하산 시작점일 거라, ‘진밭까지만 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수연약수터에 도착해 푯말을 찍으며 언니 이름과 같다고 장난도 치고, 약수터 거울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이후 약수터를 지나 진밭까지 성큼성큼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리막길이라 걷기 좋다. 울창한 숲도 좋고 여유를 가지고 걷고 싶어 뒤따라오는 등산객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걷는다. 길가에 너른 바위가 나와 잠시 걸터앉아 쉬기도 하면서 여유를 가진다.
만경사에서 2km를 걸어 진밭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휑하다 싶을 만큼 아무것도 없는 진밭이다. 질척한 밭이라 진밭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왔을 뿐 무얼 기대하거나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정표나 날머리를 안내해주는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부터 이상한 낌새를 났다.
갑자기 느낌이 싸하다. 돌연 극의 장르가 바뀐 기분이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 정확히 어디서부터 얼마나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몹시도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는다. 길은 외길인데 왜인지 이 길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일단 방법이 없으니 진밭을 지나쳐 빠르게 걸어간다. 조금 뒤에 나타난 이정표는 ‘영천사’를 가리키고 있다. 영천사? 만경사 삼거리에서 영천사와 수연약수터 중 우리는 수연약수터 길을 선택했고, 진밭까지 왔는데……, 왜 영천사를 가리키는 거지? 처음에는 이정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순환코스라고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봉산 만경사를 지난다. 처음부터 만경사로 가야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고봉산을 한 바퀴 돌았다.
순환코스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 바퀴를 도는 코스란 말이니까. 어떻게 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진밭까지 걷는 동안 다른 길은 없었는데.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걸까? 그러고 보니 만경사 이후부터는 표지기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당최 감이 오지 않는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침착하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는다고 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본다. 삼거리에서 순환 코스로 진입하는 것부터 잘못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봉산 지나 황룡산으로 가는데 둘레길과 같은 순환코스를 따라가는 것도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
오늘 코스가 죄다 낮은 곳만 지나다 보니 이상하게 생각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잠시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급한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 보니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정보가 중구난방으로 뒤섞여 생각이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나쳐온 삼거리 갈림길까지는 왔다는 것이다. 만경사까지는 맞는 길이었다. 그럼 둘 중의 하나다. 영천사로 갔어야 했거나 우리가 수연약수터에서 진밭으로 가면서 길을 놓친 것. 한참을 휴대폰을 붙잡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네,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수연 언니와 입씨름을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자!
수연 언니와 이름이 같은 약수터. 장난스런 선택이 대형 알바의 시작이 될지 몰랐다.
현재 진밭에서 영천사 방향으로 조금 진행한 상태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 현재의 위치에서 볼 때 처음 만경사로 돌아가는 건 영천사로 가던 수연약수터로 가던 비슷비슷할 것 같다. 혹시 놓친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가보기로 한다. 만경사에서 산길을 따라 2km는 넘게 왔을 텐데……, 지나온 길을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2km를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수연약수터로 돌아가는 길,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이정표도 없고 다른 길도 없다. 작전을 바꿔 길을 지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 여쭤보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한북정맥은 모두들 모른다. 다들 이 코스로 자주 마실 나오는 동네 주민들이다. 한북정맥 길은 모르지만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주시려는 친절함에 감사했다.
굽은 나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형 알바라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에라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으니 지도에 GPS를 보며 그냥 무대포식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만경사까지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언니도 달리 답이 없으니 알겠다고 한다.
지도 GPS 방향 한 번 살피고, 흔적이 남아있는 길을 따라 고도를 높인다. 올라가다 보니 길이 아주 없지도 않다.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거미줄 때문에 다시금 스틱을 들어야 했지만 점점 길이 선명해져 용기를 얻는다.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며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만경사에서 8시에 출발했는데 1시간이 넘도록 고봉산을 벗어나기는커녕 제대로 된 길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슬슬 조급함이 몰려온다. 때마침 기자님께 전화가 걸려온다. 고봉산에서 내려오면 전화하겠다더니 한 시간째 감감무소식이라 걱정하셨나 보다. 알바를 한 덕에 아직 고봉산은 구경도 못 했다고 사정을 이야기하니 내 걱정은 말고 너무 서두르지 말라며 천천히 찾으라고 걱정하신다. 일단은 고봉산을 지나서 도로를 걸을 때 전화하겠다고 하고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직감이 맞았다. 된비알을 치고 올라 가다보니 장사바위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경사에서 영천사로 가서, 장사바위로 오르면 금방이라고 한다. 고봉산 사면을 도는 모양새인데 길옆으로 고봉산 정상에 세워진 철탑을 보면서 장사바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만경사에서 영천사까지 400m, 영천사에서 장사바위까지 다시 400m. 800m만 오르면 되는 길을 4km씩이나 헤매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았다.
나중에 알고서는 많이 허탈했지만 어쩌겠는가. 길을 꼼꼼히 보지 않은 우리 잘못이다. 고봉산이 200m 고지라고 너무 만만히 보았다. 왜 수연약수터 쪽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밤새 걷다가 해 뜨고 피곤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일이 꼬이려고 한다면야 어떻게든 꼬인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장사바위가 열쇠였다는 것만 알았어도 좀 더 일찍 길을 찾았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안내문에 따르면 고봉산은 일산 지역의 최고봉으로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중심에 있어 이 일대의 중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고봉봉수가 있으나 현재 군사시설 지역에 포함되어 일반인의 출입은 자유롭지 못하다. 걷다가 만나는 고봉산 안내문에 그렇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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