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기본' 예찬.. 손웅정이 말하면 '철학'이 되고, 손흥민에 이르면 '교육'이 된다"

강석봉 기자 2022. 6. 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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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의 자서전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리뷰


그 출발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결과론적 이야기는 멋진 말이지만 쓸데없는 희망고문에 사람을 지치게도 한다. 게다가 그게 오독이라면 과정의 치열함은 결과의 화려함에 가려지기 십상이다.

EPL 프리미어 리그에서 공동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의 아버지 손정웅 씨도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아들 손흥민의 현재가 손웅정 씨의 철저한 교육에 기인한 것에 대한 칭송 역시 그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 미약한 출발은 ‘피땀눈물’의 결과다. 결코 하찮게 ‘퉁’칠 수 없는 노력이었다. 그런고로 그 출발은 거침이 없었기에 그 끝이 창대했음이랴. 그 풀스토리가 손웅정 씨가 쓴 이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 간)가 그것이다.

1962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축구를 유난히 좋아한 한 소년의 지난 이야기다. 그에게 축구는 곧 그의 전부였다. 축구공만 보면 그저 좋았고, 축구만 하면 너무나 행복했다.

늘 축구만 생각하며 살던 그는 중학교 때 서산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전학을 왔고, 춘천고를 졸업한 후 명지대에 들어가 대학 최고의 축구 명문으로 만들었다.

명지대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해 2년간 복무 후 프로구단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다. 당시 5골을 넣었고, 1986년엔 대한민국 U23 브라질 순회 축구 대회 대표로도 뛰며 촉망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세상은 영웅에게 탄탄대로를 달리는 밋밋한 스토리텔링을 요구하지 않는다.

손웅정 씨는 1988년 부상을 당했다. 박종환 프로축구 ‘일화’ 감독은 그를 일화 천마에 입단시켰고 2년동안 조커로 그라운드를 누비게 했다. 그러나 또다시 부상으로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일용직, 막노동, 헬스 트레이너,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 시설 관리 일 등 투잡, 쓰리잡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혹자 미약해 보일 수 있는 그의 삶은, 인생을 책임지는 위대한 가장의 퐁모가 담겨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고단한 그의 삶이 그에게 자랑스럽지는 않았을게다. 지게를 지고 공사판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고 창피했다. 왕년에 프로선수로 뛰던 자신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렸다.

스스로 그런 모습에 대한 반성이 뒤따랐다. 영웅스토리의 ‘각성’이 그에게 실제로 일어났다.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우스웠다.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왕년에 뭘 했든 처자식 입을거리 먹을거리 챙기지 못하는 놈팡이가 될 바에야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늘 기도하며 낮은 자세로 삶을 대하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공사판 막노동은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운동과 독서만큼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고, 막노동을 나가는 날에도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3시 반에라도 일어나 개인 운동을 했다.

두 아들과의 운동은 같이 했지만 축구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이들 스스로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마음껏 뛰어놀던 아들은 축구를 택했다. ‘쉬운 길이 아니다’ ‘보통 각오로는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재차 묻고 확인했지만 어린 아들은 축구 앞에서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아들들에게 축구의 기본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자 사람들은 그를 보고 손가락질했다.

집도 가난한데 허구헌날 애들이랑 운동장에서 공이나 차고 있다며 한심한 미친놈 소리는 늘 따라붙었다. 제도권 밖에서 개인 훈련만 시키는 그에게 ‘정신 나갔다’는 소리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는 선수시절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였지만, 딱하게도 그는 선수 한 명 제칠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전혀 완성시키지 못했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축구였고, 스피드 하나 믿고 덤볐던 축구였다. 기본기가 없었지만 성적을 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뛰었고 몸은 금방 망가졌다.

그래서 ‘나처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만큼은 정반대의 시스템을 갖추고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본기였다. 아이들에게 7년간은 슛팅을 못하게 하고, 기본기만 가지고 연습을 시켰다. 양발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 양발 연습을 시키고 모든 생활습관도 왼손을 먼저 사용하게 했다.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기와 인성이기에 꾸준하고 끈질긴 노력, 감사와 존중의 마음,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를 강조하며 두 아들의 축구를 직접 지도했고, 유소년 축구 교육 센터 ‘손축구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런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게 가르친 아버지 역시 위대한 아버지상의 반열에 근접했다. 하지만 여전히 ‘끝’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아들 손흥민이 ‘월클’(월드 클래스)가 아니라 단언한 것처럼, 창대한 손웅정 씨의 오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뻔한 ‘기본’ 이야기는 일반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손웅정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남달라진다.

“축구에 왕도란 없다. 손흥민이 데뷔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 표현했다. 저는 그 누구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혜성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

손웅정 씨는 또한 이렇게 강조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본기이다, 축구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훌륭한 인성을 갖추어 인생을 겸손과 감사, 성실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먼저 인성이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꼭 축구에만 유효한 말은 아니다. 결국 이 책은 손웅정 씨의 자서전이기 전에, 인생과 교육의 지침서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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