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며느리인데..우린 매일 웃어요"

2022. 6. 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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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니가 왜 내 손주한테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니?" 치매 걸린 시어머니의 닦달에 며느리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어머머, 쟤 눈 뒤집어졌어." 어느 한 시절에 멈춘 이북 사투리로 차진 욕을 툭툭 뱉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징글징글한 세월을 견디며 서로 미워하고 의지했다.

"둘이 마주 보고 매일 웃어요.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웃음이 나왔을 거 같아요."(이경성) 무언의 약속을 오래 품은 동지들의 눈빛에 연극의 한 장면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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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강애심·이경성
내달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서 공연
시어머니와 며느리 '애증의 관계' 열연
연기경력 도합 75년..인생 3분의2 무대에
늦깎이 '드라마스타'..엄마 연기로 화면 장악
"서로 한 발짝 다가서서 화해하는 이야기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 될것 같아"

“야, 니가 왜 내 손주한테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니?” 치매 걸린 시어머니의 닦달에 며느리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어머머, 쟤 눈 뒤집어졌어.” 어느 한 시절에 멈춘 이북 사투리로 차진 욕을 툭툭 뱉는다. 여자의 표정이 두 사람의 사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애증의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징글징글한 세월을 견디며 서로 미워하고 의지했다. “지지리 궁상 떠는 가족들의 모습”은 무대 뒤까지 이어진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터졌다. 뭔가 재밌는 일이 있는게 분명하다. “둘이 마주 보고 매일 웃어요.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웃음이 나왔을 거 같아요.”(이경성) 무언의 약속을 오래 품은 동지들의 눈빛에 연극의 한 장면이 스친다.

“어느 순간 상대 배우와 딱 맞아 떨어져 희한하게 화학작용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탁 튀어나와요. 서로가 알아요. 그 땐 대본엔 없는 말들, 대사는 같아도 이전과는 다른 뉘앙스의 감정표현이 자연발생적으로 확 나오는 거예요.” (강애심) “그래서 애초에 나온 대본과 공연용 대본이 달라요.(웃음)”(이경성)

두 사람 모두 늦깎이 ‘드라마 스타’다. 이경성(58)은 최근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SBS) 속 삼남매의 엄마로 데뷔 36년 만에 안방극장에 입성했고, 강애심(59)은 2019년 ‘멜로가 체질’(JTBC)을 시작으로 최근 ‘며느라기2’까지 여러 배우들의 엄마로 TV를 누볐다. 드라마에선 생소했던 얼굴들이 ‘연기’로 단박에 화면을 장악했다.

“무대를 정서적 고향이자 뿌리”라고 말하는 두 배우가 연극에서 만난다. ‘툇마루가 있는 집’(7월 10일까지·대학로예술극장)를 통해서다. 드라마에서 만난 배우들의 연기 합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회다. 최근 서울 장안동의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 달을 꽉 채워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연극은 2017년 초연돼 올해로 세 번째 공연이다. 1970~80년대 청년기를 보내며 상처 입은 중장년 세대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지나온 시대, 그 안의 관계들과 화해하는 이야기다. 이경성은 주인공 남자의 아내와 엄마로 ‘1인 2역’을 하고, 강애심은 그의 시어머니 역할이다.

2030 세대 관객과 배우들이 공연계의 주축이 되는 때에 ‘툇마루가 있는 집’은 중장년 세대를 극의 안팎으로 불러온다. 50대를 넘어선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다. “아내와 엄마를 1인 2역으로 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연출가는 계속 맞물리고 반복되는 여자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작품에선 외부엔 군부 독재라는 시대적인 폭력이 있다면, 집안엔 가부장적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이 있어요. 그것을 참고 견디는 엄마와 아내의 삶이 공감을 불러올 것 같아요.”(이경성)

다시 만나는 작품인데도 배우들은 모든 장면에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한다. 이미 완성된 대본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위에서 새로운 디테일이 쌓인다.

“기존의 대사에 이런 대사를 더하면 부드럽게 넘어가겠다 하는 부분들이 생겨 대사가 하나 둘 늘어나요. 연결된 대화의 흐름을 윤활하게 하는 거죠. 그 안에서 웃음 포인트가 있고, 다른 배우와의 시너지에 따라 리액션이 풍부해져요. 예전엔 못 찾았던 것들이 찾아지는 거죠.” (강애심) “그게 현장 예술의 맛이거든요.” (이경성)

강애심은 이 작품에 대해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지만, 섬세하고 내밀한 연출과 함께 한 가족에 대한 진실된 리얼리즘을 찾아가는 과정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한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지금까지 이어오는 공통된 아픔과 억압이 있어요. 그 안에서 서로 한 발짝 다가서서 화해하는 이야기예요. 풍요롭진 않아도 서로 나누면 살던 그 때를 추억하며,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 같아요.” (강애심, 이경성)

▶연기경력 도합 75년...“무대에선 모두가 함께 배우는 존재”=뒤늦게 TV를 오가는 ‘엄마 배우’로 얼굴을 알렸지만, 두 사람 모두 ‘무대가 고향’이다. 강애심은 1983년 연극 ‘더 넥스트’, 이경성은 1986년 연극 ‘어두워질 때까지’가 첫 무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듯이” 꾸준하고 성실히 무대에 올랐다. 배우가 된 이유를 물으면 그저 “무대가 나를 불렀다”(강애심)고, “운이 좋아 지금까지 왔다”(이경성)고 한다.

무대에 설 때마다 “연극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실감한다. “눈을 마주하고 대사를 주고받는 상대와의 시너지”(강애심), “하나의 완성품을 잘 올리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논쟁”(이경성)이 이들을 더 끈끈하게 한다. 그 안에서 진실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대의 완성이다.

연기 경력으로 치면 도합 75년. 인생의 3분의 2를 무대에서 보냈으면서도 두 사람은 지금도 “성장하고, 배운다”고 말한다.

“한동안 정체기에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에 이 대본을 받았어요. 이 작품으로 무대에 서며 여러 가지로 성장했고, 틀에 박힌 연기에서도 조금은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연기도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경성)

무대에선 모두가 스승이고, 학생이다. 강애심은 “선배든 후배든 함께 배우는 존재”라고 했다. 40대 중반 무렵 보러 간 연극에서 ‘왕의 시종’ 역할을 맡은 새까맣게 어린 후배에게서 받은 감동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대에서 너무나 성심성의껏 몰입해서 왕의 의자를 닦더라고요.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 친구만 보였어요. 그 후배를 통해 많이 배웠어요.”

무대 위에서 살았고, 무대 위를 살아갈 날들에서 이젠 후배들의 ‘후광’이 되기를 희망한다. “배역은 중요하지 않아요. ‘세상엔 작은 배역은 없고, 작은 배우만 있다’고 이야기해요. 좋은 후배, 좋은 배우들이 많이 생겨 우리가 저들 뒤에 서야 하는 때가 됐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강애심, 이경성)

고승희 기자

사진=이상섭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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