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장마 중의 서점

기자 2022. 6. 29. 11: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비가 온다고 손님이 적은 것은 아니다.

비가 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겠지.

그만큼 평화로운 것이 또 어딨나.

비 오는 날 서점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다 얻었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궁극의 평화는 귀로 오는 것/ 오늘 빗소리는 가릴 것이 많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고/ 먼지는 새로 태어나고/ 항아리보다 먼저 뚜껑이 깨진다/ 이별과 만남을 이야기하는 세계에/ 희망은 참 많이 뜨고 진다/ 어둠은 평등한 이불인가/ 따뜻한가/ 여기저기 잠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꿈속에 발을 뻗는다’

- 이근화 ‘화해와 불평등’(시집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

비가 온다고 손님이 적은 것은 아니다. 비가 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겠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이 제법 된다. 축축해진 채 서가 앞에 서서 책을 보고 있는 그들은, 세워 놓은 우산을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혼자 웃는다.

하지만 장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비가 얼마나 쏟아질지 짐작도 되지 않는 때에 외출이 쉽겠는가. 요즘은 동네 단위, 시간 단위로 예보가 되지만 숫자와 현실은 다르니 망설이는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럼에도 섭섭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종일 사람 없는 서점에 앉아서 빗소리나 듣고 있다 보면 처량해지고 만다. 그래도 창문 두드리는 빗소리는 좋지. 그만큼 평화로운 것이 또 어딨나. 초라해진 나의 처지와 평온한 속내라니. 이 또한 우스운 일이라 다시 웃는다.

어둑한 밤이 찾아오면, 에라 모르겠다. 일찍 문 닫고 돌아가야지 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또 누가 찾아온다. 오늘은, 한 달에 한두 번 꼬박꼬박 찾아오는 단골이 왔다. 신문에서 새 시집 소개 기사를 봤다고 한다. 그 시집은 아직 서점에 없다. 미안해서 어쩌죠. 날씨도 이런데 헛걸음하셨네. 머리 긁적거리는 사과를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넘긴다. 아휴, 무슨 말씀을. 비 오는 날 서점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다 얻었습니다. 사실일까. 의심은 생기지도 않고 나는 그의 말에 홀랑 속아 넘어가고 만다. 너무 근사해서 뿌듯해서.

시인·서점지기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