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캐던 어민 신고, 태안서 궁궐 용머리기와 원형 발굴

2022. 6. 29. 09: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태안 양잠리 청포대 갯벌 일대를 조사하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연수)는 지난해와 올해 5월 각각 발굴한 용머리 장식기와(취두, 鷲頭) 상단과 지난해 6월 출토한 칼자루 모양 장식품이자 취두 상단에 부착하는 검파(劍把)를 29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검파 발굴로 인해 건물 용마루에 올라가는 취두 전체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출토됨에 따라 조선 전기 용머리 장식기와의 완전한 형태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시대 왕실 관련 마루장식기와(목조건축의 지붕마루에 사용되어 건물을 수호하거나 권위와 미관을 돋보이게 한다) 연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양문화재硏, 조선전기 취두·검파 마침내 결합
서울 '와서'에서 제작,지방 왕실전각 쓰려다 좌초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태안 양잠리 청포대 갯벌 일대를 조사하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연수)는 지난해와 올해 5월 각각 발굴한 용머리 장식기와(취두, 鷲頭) 상단과 지난해 6월 출토한 칼자루 모양 장식품이자 취두 상단에 부착하는 검파(劍把)를 29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헤럴드경제 2021년 8월19일 보도

태안서 발굴된 취두와 뾰족하게 꼽아둔 검파
지난해 취두의 갯벌 발굴에 이어 올해 5월에 발굴된 검파

취두(鷲頭)는 궁궐 등 왕실 관련 건축물 용마루 양쪽 끝에 설치하는 대형 장식기와이고, 검파(劍把)는 취두 상단에 꽂는 칼자루 모양의 토제 장식품이다.

이는 2019년에 조개 캐던 주민이 발견해 신고한 장식기와 하단과 결합되는 유물이며, 지난해 6월 연구소가 인근 지역에서 추가로 발굴해 낸 또다른 장식기와 유물(상하단)과 쌍을 이루는 것이 확인됐다.

검파 발굴로 인해 건물 용마루에 올라가는 취두 전체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출토됨에 따라 조선 전기 용머리 장식기와의 완전한 형태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시대 왕실 관련 마루장식기와(목조건축의 지붕마루에 사용되어 건물을 수호하거나 권위와 미관을 돋보이게 한다) 연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특히 경복궁 창건기 건물 및 숭례문, 양주 회암사지 등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의 세부 모습에 대한 실질적인 고증이 가능한 유일한 고고자료로도 평가된다.

지난해 태안 갯벌에서 발굴된 취두
일반적인 왕실 전각 용마루~추녀 부분 배치도

김동훈 연구관은 서울의 왕실기와 제작관청 ‘와서’에서 만든 것이 지방에서 발견된 이유에 대해 “지방에도 왕실 관련 전각와 사찰이 여럿 있고, 이들 전각도 궁궐 양식을 따르는데, 한양에서 만들어진 용마루 장식 기와를 충청 또는 그 이남 지방의 왕실관련 전각에 쓰려고 운반하다가 물살 거세고 암초 많은 태안 앞바다에서 좌초해, 유물들이 갯벌에 표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마루 갉아먹지 마라..검파 기능성,상징성= 지난 5월에 발굴된 검파는 길이 40.5cm, 폭 16cm, 두께 7cm 크기의 칼 손잡이 모양으로, 앞뒷면에 2단으로 구름무늬(운문, 雲紋)가 표현되어 있고, 취두 상단의 방형 구멍과 결합되도록 짧은 자루도 갖추고 있다.

검파는 빗물이 취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취두에 표현된 용이 지붕을 물고 있어 더 이상 용마루를 갉아먹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 발굴된 구름무늬 검파는 현재 창덕궁 인정문 등 조선 후기 궁궐 지붕의 용머리 장식기와에 일부 남아있는 문양 없는 간략한 막대(棒) 모양 검파와 형태상 차이가 있다.

또한, 한 쌍의 취두 하단부에 부조된 용 문양의 표현에서도 갈퀴의 표현 방식과 구렛나루 사이의 돌기 개수 등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 전기만 해도 규격화된 형태의 용(龍) 도상을 마련하여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였던 결과로 보인다.

취두,검파가 부착된 완전체. 창덕궁 인정전.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8월 중순까지 해당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와 수중탐사를 진행하여 관련 유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향후 취두가 출토된 인근해역의 고선박 존재와 왕실 장식기와의 생산과 지방으로의 유통에 대한 심화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