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막는 규제 찾아내 없애고 R&D 투자 기업엔 마땅한 보상 해야"

최준영 기자 2022. 6. 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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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미래리포트 2022 - 대한민국 리빌딩 : 통합과 도약

세계 석학에게서 듣는다 - (3) 로버트 앳킨슨 美 정보기술혁신재단 회장

-7월 7일 ‘문화미래리포트’ 제2세션 첫번째 강연-

韓, 반도체·기계·車 강하지만

소프트웨어·정보서비스 약점

싱가포르·대만 등 눈여겨보라

신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노조

혁신·생산성·경쟁력 지연시켜

노동생산성 계속 뒤처진 이유?

他 선진국보다 中企 너무 많아

비효율적 中企 지원책 없애야

“한국 하면 ‘아시아의 유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새 정부는 공공 이익 목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혁신을 억제하기보다는 촉진하는 방식으로 규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세계 3대 혁신철학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버트 앳킨슨(68·사진)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은 최근 가진 문화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 개혁을 예고한 가운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규제 공화국’으로 통하는 상황과 관련해 “어떤 특정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그는 다음 달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대한민국 리빌딩 : 통합과 도약’을 주제로 열리는 문화미래리포트 2022에 참석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 상황과 한국 경제의 새 지향점 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앳킨슨 회장은 최근 국내에서 화두가 되는 규제 이슈에 대해 “미국과 비교할 때 유럽은 유전자 조작 작물, 인공지능(AI), 다양한 전자상거래 비즈니스 모델 등과 같은 신흥 기술과 관련해 규제가 높다”며“이 때문에 유럽의 혁신·경쟁력·경제성장이 둔화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면에서 한국은 유럽과 유사한 (기존 산업 보호와 노동자 해고 방지 등) ‘예방 원칙’ 접근 방식을 통해 새로운 파괴적 기술에 접근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앳킨슨 회장은 한국이 혁신 선도국가로 자리 잡는 데 있어 저해 요소로 소프트웨어와 정보 서비스 부문 등에서의 낮은 경쟁력을 들었다.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대상으로는 중소 국가들인 싱가포르, 스위스, 대만 등을 꼽으며 모두 오늘날 혁신 경제에서 성공을 거둔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인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많은 중소기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비효율적으로 중소기업을 보호·지원하는 다양한 규제와 보조금 제도 등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논쟁적 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코로나19 충격 이후 세계 산업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정부·기업이 어떤 대응 전략을 가져야 하나.

“다소 복잡한 질문이다. 첫째, 한국 정부는 국내 연구 중심 대학들이 혁신에 더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 전략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 상업화와 신규 창업 등의 원동력이 돼 주는 것에 대해 적절한 평가·보상을 해야 한다. 둘째, 연구·개발(R&D) 부문에 투자하는 모든 규모의 기업들에 마땅한 보상을 줘야 한다. 현재 대기업에 대한 한국의 R&D 세액 공제는 상당히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BRIC) 등 34개국 중 30위에 그치는 실정이다. 셋째, 위험 감수 등 기업가 정신을 일깨우고 청년층, 특히 여성들이 기업가적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넷째, 새 정부는 규제 검토 전담반을 구성해 혁신을 제한하는 규제를 식별하고 제거·개혁해야 한다.”

―한국에선 기술 기반 신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간 갈등도 심심찮다. 노동조합의 힘이 지나치게 막강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에선 노조가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새롭고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 형태든 자동화 형태든 말이다. 이런 태도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 위기를 겪는 한국 상황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혁신·생산성·경쟁력 등을 지연시킨다. 한국의 선출직 공무원과 학자 등이 나서 노조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 때로는 국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국민에게 꾸준히 상기시켜야 한다.”

―평소 혁신 선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 혁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혁신은 새로운 제품과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을 뜻한다. 한국 혹은 전 세계에 새로운 것일 수 있다. 연구나 시제품 개발 등 초기 단계에서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신과 생산 사이에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있다. 예컨대 생산을 아웃소싱(기업 업무 일부를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하거나 역외에서 진행할 경우, 기업의 혁신 역량은 계속 약화할 수 있다. 저명한 혁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적 가능성의 고갈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술적 가능성은 미지의 바다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고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이 말한 ‘파괴적 혁신’(산업·시장을 뒤흔들고 변화시키는 혁신)을 수용하는 것과 같다. 이는 안전하지 않은 점진적 혁신이다.”

―한국은 혁신을 선도하는 국가에 포함되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국이 선도적인 혁신 국가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ITIF가 10개국의 7개 선진 산업에 대한 성과를 조사한 해밀턴 지수(Hamilton Index) 연구에서 밝힌 바 있다. 한국 경제에서 선진 기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이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의 두 배다. 한국은 반도체와 전기·기계 장비, 자동차 분야에서 특히 강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와 정보 서비스 부문은 약점으로 꼽힌다. 세계 평균보다 이들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인더스트리 4.0’(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생산기기와 생산품 간 상호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 과정을 최적화하는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와 AI의 강점은 모든 국가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한다.”

―세계에서 혁신을 선도하는 대표 국가들은 어디인가. 특히 한국이 참고할 만한 곳을 꼽는다면.

“리더십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소프트웨어나 바이오 의약품 같은 1∼2개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아일랜드는 두 분야 모두 뛰어나지만, 자동차 부문은 상당히 약하다. 한국처럼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혁신 산출물 비중이 더 큰 국가도 있다. 2018년 기준 한국 경제는 세계 GDP의 2%에 불과했지만, 선진 산업의 부가가치는 4.1%를 차지했다. 미국은 세계 선진 산업 부가가치의 22.5%를 차지하지만, 세계 평균과 비교했을 때 이들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많은 동유럽 국가는 자동차와 소프트웨어 같은 선진 산업에서 성장세를 보였지만, 대부분이 혁신성이 떨어지는 지사 공장에서 발생했다. 한국이 벤치마킹할 대상을 찾는다면 독일이나 아일랜드, 이스라엘, 싱가포르, 스위스, 대만 등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모두 오늘날 혁신 경제에서 성공을 거둔 국가다.”

앳킨슨 회장은 한국이 인구학적 도전에 직면하면서 현직·퇴직 근로자 소득 감소, 경제적 파이 확대 문제 등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최고의 방법으로 노동 생산성 향상을 꼽았다. 이어 한국 정부가 노동 생산성과 성장률을 높일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논쟁이 일 만한 해법을 제시했다.

―한국은 인구 고령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낮은 노동 생산성을 극복할 방안이 있는가.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계속 뒤처지는 이유는 다른 OECD 국가보다 중소기업이 훨씬 많은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 LG, SK 등 대기업들의 강세를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중소기업 수가 너무 많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보다 생산성이 훨씬 낮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소기업들의 압력 때문에 비효율적인 곳들까지 지원하는 다양한 규제와 보조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사실 이런 제도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 소규모 기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해 스스로 번창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면 당연히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한국은 전자·자동차 등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현재 정보기술(IT)과 교육 등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동력 삼아 꾸준한 발전을 성취할 수 있을까.

“한국은 선진 산업 부문에서 고도로 전문화돼 있지만, 일부는 강하고 일부는 약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반도체 등 전자 분야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만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잠시라도 방심하면 심각한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2000년대 초 핀란드는 노키아의 리더십 덕분에 휴대전화 제조업 부문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었지만 2018년에는 평균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동차·전자·컴퓨터 등 부문에서 한국 선도기업들이 계속 국제적 경쟁력을 이어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수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지난 30년간 한국의 경제 엔진이었던 고부가가치 기술 기반 수출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들 산업을 어떻게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살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떻게 현명하게 미래 발전을 도모해야 하나.

“한국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 독재적 의지를 강요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하지만, 중국은 불공정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규칙을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한국이 반드시 해야 할 옳은 일은 자유와 세계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 및 동맹국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기업이 관심을 두고 투자할 만한 신산업 분야가 있을까. 성공적 육성 방안은.

“집중할 만한 신흥 기술을 식별하는 핵심 원칙 중 하나는 국가 경제가 인접해 있는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생명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컴퓨터·전자·전기장비·기계산업 분야는 모두 강하다. 이는 광범위한 자율 시스템과 로봇 분야에서 잠재적 성공을 암시한다. 각 국가가 자동화를 통해 생활수준을 향상하려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산업은 향후 20년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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