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은 민주공화국..법 만들고 재판하며 '공정' 배워요"

인지현 기자 입력 2022. 6. 29. 09:05 수정 2022. 6. 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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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금호초 6학년 1반 학생들이 지난 5월 2일 ‘지층국 정기 국회’를 열고 법률을 제정하고 수정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영천 금호초 윤보민 교사의 ‘공정학급 세우기’

선생님은 대통령 아닌 교육부장관

학생들이 토론해 1년간 규칙 세워

서로 갈등 겪고 수정하며 타협

민주주의 공동체 감각 키워줘

“아이들 판단력, 어른 못지않아

실패 이겨내는 과정 기다려주면

더 단단하게 자랄 수 있을 것”

“우리 학급에서 저는 그저 일개 교육부 장관일 뿐이에요. 학생들이 반의 주체고, 학생들과 세운 나라에서 법을 어기면 저도 똑같이 벌을 받아야 해요. 실은 벌써 2번이나 처벌을 받았답니다.” 국가를 설립하고, 법을 제정하고, 위법 행위를 판단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보면 어떨까. 이제 막 10대에 들어선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주체가 돼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실험이 가능할 수 있을까. 경북 영천 금호초 윤보민(46·가운데 사진) 교사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매년 학생들과 1년짜리 장기 정치 프로젝트를 꾸려나간다. 매년 3월부터 시작하는 ‘공정학급 세우기’ 프로젝트다.

공정학급 세우기는 아이들이 공동체 감각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입법·사법·행정부를 조직해 나라를 세우는 시뮬레이션 활동이다. 올해 금호초 6학년 1반 학생들은 자신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지층국’이라고 지었다. ‘지층처럼 다양하고 단단하게 즐겁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학급의 헌법과 각종 규칙도 직접 만들었다. 윤 교사는 “헌법에 기초해 청소 시간, 모둠의 역할, 급식 줄 정하기 등의 법률을 아이들이 직접 토론해 결정했다”면서 “이후 우리 반에 필요한 정부 부서를 결정하고 교육부, 외교부, 통일부 등의 장관을 임명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동안 윤 교사는 반의 ‘독재자’가 될 수 없고,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발언하는 교육부 장관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활동은 교사 혼자 반을 끌고 가는 데 비해 더 많은 준비와 정리가 필요하다. 교사가 사전에 주민등록증·임명장·국적신고서 등등 각종 서류를 만들어야 하고,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끼리 잦은 갈등과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 윤 교사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법률을 만들고 ‘모욕죄’ ‘소란죄’를 적용해 서로 감시하고 이르기 바쁘다”며 “그러다가 아이들이 법률 수정을 거듭하면서 타협과 공정을 자연스레 찾아갈 때, 프로젝트가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권리는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배워나간다. 책에 쓰인 개념어들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윤 교사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공정’이 무엇인지, ‘민주시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경험으로 체득해 간다”면서 “바로 배움이 삶으로 전이된 것이자, 배움이 살아있는 생명이 돼 자라는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금호초 6학년 1반은 요즘 한 달짜리 ‘경제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사업체를 운영해보고, 때로는 파산하는 경험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실 여기저기에 구인공고를 붙여 직원을 채용하고, 화폐 디자인을 공모해 돈을 발행한다. 여러 곳의 은행이 서로 이자 경쟁을 하는 한편 고용노동부에서는 불법 기업에 대한 소비자, 직원 등의 고발도 받는다.

윤 교사는 “경제 프로젝트를 하다가 어떤 기업이 잘되면 이를 소유한 친구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등 이기적인 일들도 벌어진다”면서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혼내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곤 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사유하면서 공동체 감각이 생긴다”고 말했다.

각종 프로젝트 과정에서 보듯, 윤 교사의 지론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자신의 의지로 시도했다가 실패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서 결코 부족하지 않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판단하고 실패하고 다시 판단을 수정하는 경험의 시간을 부모님들께서 기다려주신다면 아이들은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사는 그 과정에서 선생님인 자신의 역할은 “교실의 n분의 1이 되는 것”이라면서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배우고 발언하는 교사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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