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없이도 매혹적인 스크린..'박찬욱표 디테일'을 보라

박세희 기자 2022. 6.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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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박찬욱 감독이 내놓은 ‘헤어질 결심’ 속 형사 해준은 남편 살해 용의자인 서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은유, 수많은 디테일, 미장센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영화다.

■ 영화 ‘헤어질 결심’ 오늘 개봉… 관람 포인트는?

1. 수시로 안약 넣는 해준

살인 사건과 안개 짙은 도시…

현실 보려는 형사 해준의 성정

2. 립밤 발라주는 서래

‘사랑한다’ 직접 말하지 않지만

‘입 맞추고 싶다’는 간접적 고백

3. 취조실 식사 메뉴

신문인듯 연애 같은 시간 ‘초밥’

분노·연민의 감정에선 ‘핫도그’

4. 산·바다 패턴 벽지

‘산이 싫다’고 말하는 서래에게

산 같은 해준이 빠져드는 과정

박찬욱 감독에게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작품 ‘헤어질 결심’이 29일 개봉했다.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 전작에서 보였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은 없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박찬욱표’ 디테일과 미장센.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남편 살해 용의자인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 의심과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헤어질 결심’은 매력적인 스토리라인과 섬세한 디테일, 미장센이 잘 어우러진 걸작(傑作)이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놓쳐서는 안 될 디테일 네 가지를 꼽아봤다.

◇안약

“모든 것은 ‘안개’(정훈희)라는 노래에서 시작됐다”고 박 감독은 이야기했다. 영화 내내 흐르는 노래도 ‘안개’이고 특히 영화 후반부의 무대인 가상 도시 ‘이포’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이런 가운데 ‘눈’은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다뤄진다. 카메라는 죽은 서래의 남편 시점에서 눈알을 지나는 개미를 비추고, 심지어 죽은 생선의 시점에서 해준 부부를 비춘다. 해준은 “살인사건 현장에 가면 반쯤은 눈을 뜨고 있는데 그 눈이 마지막으로 봤을 범인을 꼭 잡아들이겠다고 다짐합니다”라고 소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화에서 해준은 안약을 수차례 넣는데, 안개가 짙은 상황에서도 현실을 또렷이 보려고 노력하는 그의 성정을 드러낸다.

◇립밤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상대가 나와 비슷하다면 더 호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해준은 남편의 사망 당시 모습을 직접 볼지, 이야기로 들을지 결정하라고 했을 때 서래가 직접 보겠다고 답하자 ‘같은 종족’이라고 느낀다. 이 같은 동질감 때문이든, 잠복하며 몰래 본 그녀의 사랑스러움 때문이든 해준은 서래와 사랑에 빠진다. 해준은 서래에게 볶음밥을 해주고 서래는 불면증을 겪는 해준을 재워준다. 서래는 수차례 해준의 입술에 립밤을 바른다.

박 감독은 박해일 배우를 섭외할 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박해일은 그 말에 크게 끌렸다. 하지만 이 어른들 이야기에 격정적인 애정신은 없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고백도 없다. 그 대신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다. 서래의 립밤은 해준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은유다.

◇초밥과 핫도그

보통 형사가 용의자를 신문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뭘 시켜먹을까. 우리가 주로 봐온 것은 국밥, 설렁탕 정도다. 해준이 서래에게 준 것은 초밥. 고급 일식당에서 포장해온 모둠 초밥이다. 둘은 밀폐된 신문실에서 함께 초밥을 먹고 식사를 마친 뒤 함께 양치도 한다. 둘은 그렇게 ‘신문인 듯 연애 같은’ 무엇을 한다.

영화는 부산에서의 1부, 가상의 도시 이포에서의 2부로 구성된다. 이포에서 두 사람은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사망해 또다시 형사와 용의자로 만나는데 이때 신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습니까”라고 묻는 해준의 말에는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과 분노, 연민과 사랑이 담겨있다. 이때 그가 서래에게 내미는 것은 핫도그 하나. 핫도그를 바라보는 서래의 표정은 압권이다. 박 감독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나 특수효과 없이 해준과 서래의 대사와 연기로만 만든 장면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 서로를 향한 공격과 역공은 그 자체로 관객을 긴장시킨다.

◇벽지와 경찰서

해준은 서래에게 ‘꼿꼿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범인을 잡으러 다닐 때도 정장을 입는 해준이다. 정장을 입고 사격 연습을 하는 해준은 꼿꼿한 ‘산’과 같다. 그런 사람이 “산이 싫다”는 서래를 만나 ‘붕괴’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다. 서래는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을 대며 자신은 산이 싫다고 말한다. 탕웨이는 “영화 전반에 있어 의미가 있는 대사”라고 했는데, 산과 바다는 영화에서 중요한 메타포다. 이는 서래의 집에도 활용된다. 바다 물결과 산 능선을 떠올리게 하는 과감한 패턴의 푸른색 벽지로 서래의 집을 채운 것. 그 자체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해준이 주로 생활하는 경찰서의 모습도 우리가 익히 아는 경찰서와 다르다. 마치 디자인 회사 사무실 같다. 박 감독은 “지엽적인 사실성, 리얼리티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토리와 캐릭터에 어울리는 공간이 뭘까 더 고민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디테일에 모든 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서경 작가나 류성희 미술감독과 앉아서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이 영화의 주제는 뭐지?’라고 하기보단 ‘이 커피잔은 무슨 색이지?’라고 하는 게 괜찮은 시작입니다. 배우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 사람은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대화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넥타이를 매는 타입’이라고 하는 식으로 출발해야 하죠. 저는 그런 디테일을 믿습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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