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을 통해 연극을 사유하는 무대[문화프리뷰]

2022. 6.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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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작,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은 도발적인 연극이다. 일단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관객은 왕’이라 해도 아쉬울 판국에 뻔뻔하게도 관객을 ‘모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홍보사진도 강렬하다. 빈 객석에서 무서운 표정의 배우들이 정면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과연 이 연극, 어떻게 관객을 모독하고 왜 관객을 모독하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실제로 공연 중 배우들은 관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이런저런 ‘험한 말’을 쏟아놓는다. 또 편안한 어둠 속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공연 내내 환하게 객석 등을 켜놓는다. 뿐만 아니라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분무기와 세숫대야를 동원해 시원한 물세례를 선사하기도 한다.

연극 <관객모독> 포스터 / 팀플레이예술기획


실제로 이런 ‘모독’은 아주 사소한 장치에 불과할 뿐, 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이 〈관객모독〉인 것은 기존의 ‘관객’이 연극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저버리고, 완벽하게 그 기대를 벗어나는 연극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관객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환상, 선입견, 생각을 비웃고 무시하고 일부러 파괴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관객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모독’한다.

먼저 이 작품은 기존의 연극적 형식을 모두 무시하고 파괴한다. 플롯이나 서사는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이나 배경, 막이나 장의 구분 자체가 아예 없다. 빈 의자 4개만 나란히 놓여 있는 텅 빈 무대 위, 막이 오르면 무채색의 의상을 입은 4명의 배우가 앞으로 걸어 나온다. 무대와 객석의 조명이 동시에 밝아지면서 배우와 관객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이어서 네 배우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 특별한 순서도 연관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사는 무대 위에 어떤 ‘이야기’나 ‘환상’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를 통해 배우들은 관객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관례적으로 반복해온 관극 습관, 공연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비판하고 전복시킨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모독’을 받으면서도 관객들은 기분이 나쁘거나 짜증이 나기보다 오히려 더 연극이라는 대상, 관극이라는 행위에 재미를 느낀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은 원본 텍스트 자체로도 충분히 도발적이고 흥미진진하지만, 이 작품을 더욱 생생하고 동시대적인 ‘살아 있는’ 공연으로 만든 것은 극단 76의 수장인 기국서 연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극이 지닐 수밖에 없는 언어적 한계를 어조의 변화, 엉뚱하게 끊어 말하기, 후렴구 복창하기, 6개 국어로 이야기하기, 동음이의어로 생소한 의미 만들어내기 등 다채로운 언어유희와 말장난으로 각색한 데서는 오랜 시간 수많은 무대 언어를 조련해온 거장의 솜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대사 간간이 동시대적인 이슈와 사회의식을 절묘하게 끄집어내는 솜씨에서는 왜 기국서가 여전히 ‘영원한 청년 햄릿’, ‘살아 있는 시대정신’으로 일컬어지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아마 그러한 언어 감각과 비판의식이야말로 〈관객모독〉이 1978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되면서 동시대 관객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킨 원동력일 것이다. 2014년 이후 8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이번 〈관객모독〉 공연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젊고 개성 있는 배우들이 함께한다. 7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대학로 아티스탄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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