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헤어짐'과 이상한 '결심'[시네프리뷰]

2022. 6.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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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박찬욱 감독이 스크린 속에 그려내는 세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과장된 인물들은 여전히 낯선 언어로 소통하며 여전히 기괴한 파국을 향해 손을 잡고 내달린다. 바로 이 지점이 장점이자 한계다.


제목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38분
장르 멜로, 드라마
감독 박찬욱
출연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고경표, 박용우
개봉 2022년 6월 2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모호필름


‘명불허전’. 〈헤어질 결심〉은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박찬욱 감독의 영화다.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돼 첫 상영된 이후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점에서 상영작 중 1위를 기록하며 감독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여세를 몰아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되는 성과도 이뤘다. 당연히 외관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박찬욱의 ‘스타일’은 고유한 인장처럼 대우받아왔다. 여전히 관건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이다.

장해준(박해일 분)은 투철한 책임감과 올곧은 정의감, 여기에 청렴함까지 고루 겸비한 형사다. 멀리 원전에서 근무하는 아내(이정현 분)와 오랫동안 주말부부로 금실 좋게 살고 있는 그는 언제부턴가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다.

어느 날 산꼭대기 벼랑에서 추락한 중년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건을 조사하던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인 송서래(탕웨이 분)를 마주하는 순간 뜻밖의 동요를 느낀다. 어딘지 모르게 그늘져 보이는 중국인 서래는 한국말이 서툰 탓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하지만, 남편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내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다. 서래가 범인일 수도 있는 정황으로 주변에서 잠복하며 지켜보던 해준은 서서히 그에게 빠져들고 무기력한 일상은 활력을 되찾는다. 그렇게 서서히 두 사람의 관심이 깊어갈 즈음 서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고 해준은 큰 혼란에 빠진다.

박찬욱이 도전하는 정통 멜로영화

영화 초반부의 설정은 1990년대 유행했던 성적 범죄 스릴러를 연상시킨다. 거슬러 올라가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걸작 〈차이나타운〉(1974)이나 샤론 스톤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원초적 본능〉(1992), 일본 호러 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영화화된 기시 유스케 원작의 〈검은 집〉 같은 작품이 생각난다.

미모의 용의자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사는 중년 남성의 마음을 뇌쇄적 매력으로 한순간에 송두리째 빼앗는다. 불붙은 열정으로 이성을 잃은 자에게 진실이나 정의 같은 대의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절반이 지나면 이런 표면적 특징이 두드러진 1장은 막을 내린다. 이를 발판으로 새롭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좀더 심화된 인물들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헤어질 결심〉은 이전까지 봐왔던 박찬욱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소문이 일찌감치 돌았다. 적어도 섬세한 시선으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정통 멜로를 표방했다는 점은 차별점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고 그가 스크린 속에 그려내는 세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과장된 인물들은 여전히 낯선 언어로 소통하며 여전히 기괴한 파국을 향해 손을 잡고 내달린다. 이 지점이 바로 장점이자 한계다.

뜨거운 감정을 밀어내는 차가운 기교

후반부에 이르러 두 남녀와 주변 인물들의 갈등이 절정에 치닫는다. 관객들은 여전히 몰입하기 쉽지 않다.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관찰자 또는 방관자의 시선에서 도식적으로 나열되는 그들 사이의 격한 감정을 추정할 뿐이다.

극 중 남녀의 감정이 나름 절절함에도 관객에게까지 온전하게 가닿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곱씹어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장치를 세심하게 마련해 놓은 것도 사실이다. 길고양이가 보은하기 위해 물어온 까마귀의 무덤과 깃털이라든가,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드는 다른 언어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뒤튼 유희 등이 대표적이다. 외로움과 솔직함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두 사람을 위태롭게나마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사랑이란 게 머리보다 심장이 앞서는 것처럼, 사랑 이야기라면 치밀한 계산이나 알량한 포석보다 일단 감정적으로 충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초부터 손에 쥔 건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서로에 대한 호감이 절실할 수 있을까? 또 쉽게 ‘헤어질 결심’부터 전제해 기행으로 일관하는 옹색한 관계를 응원하고 싶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기교적으로 잘 만든 작품은 맞지만, 텀벙 빠져들기엔 너무나 영화 같은 영화다.

칸영화제가 사랑한 한국감독 ‘칸느 박’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대접받는 박찬욱 감독은 유난히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그래서 그는 ‘칸의 남자’, ‘칸느 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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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국제적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한 〈올드 보이〉(2003)는 칸영화제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2003년 11월 한국에서 개봉한 〈올드 보이〉는 칸영화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 영화제가 전 세계 최초 상영을 전제로 초대작을 선정하는 관례를 깨고 2004년 5월 열린 제57회 영화제에 초청됐다. 처음에는 비경쟁부문으로 초청이 진행됐지만, 개막을 얼마 앞두고 경쟁부문으로 출품이 변경되면서 결국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의 영예를 안게 돼 더욱 이례적인 기록으로 남았다.

제62회 영화제에선 〈박쥐〉(2009)가 여류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국영화 〈피쉬 탱크〉와 함께 심사위원상을 공동수상했다. 감독 스스로는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박쥐〉를 꼽았다. 제69회에 〈아가씨〉(2016)를 경쟁부문에 출품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독립부문 중 하나인 벌칸상을 받았다.

2017년의 제70회 영화제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번 〈헤어질 결심〉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로써 한국감독 가운데는 최다 초청 기록을 갖게 됐다. 여기에 〈올드 보이〉와 〈박쥐〉에 이어 이번에 본상을 세 번째로 수상하면서 한국 영화인 최다 수상 기록도 세웠다. 또 이번 감독상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이후 20년 만에 한국 작품이 받은 감독상이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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