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형의 소인 이야기[장르물 전성시대]

2022. 6. 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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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 잭은 하늘까지 닿는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름나라 부자 거인의 재물을 훔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를 죽여버린다.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동물사회에 빗대 야유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구두 굽을 얼마나 높이면 좋을지 핏대를 세우는 소인국 귀족들을 통해 사소한 문제로 소모적 정쟁을 일삼는 당대의 영국 정계를 비꼰다. 예로부터 소인 이야기는 세태비판 의도가 다분했다. 이런 경향이 현대 과학소설에서도 눈에 띈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유형은 크게 두가지다. 종래의 소인 이야기들처럼 사회풍자가 목적이거나 아니면 소인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 그리고 과연 그들이 세상과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다운사이징> 포스터 /네이버 영화


첫 번째 유형으로 리처드 매드슨의 장편 〈줄어드는 남자〉(1956)와 영화 〈다운사이징〉(2017)이 있다. 〈줄어드는 남자〉는 뜻하지 않은 방사선 피폭으로 몸이 자꾸만 줄어드는 한 남자의 비극이다. 엄지공주만 해져 가족과 결별한 그는 계속 작아진다.

동시에 반대로 거대해진 벌레들에 맞서 사투를 벌인다. 미소 냉전기에 발표된 이 소설은 전면 핵전쟁의 공포를 한 개인의 고통을 통해 구체화한다. 〈다운사이징〉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화두는 인구폭발이다. 인구는 늘어만 가고 자원은 줄어들기만 하니 신체를 원래보다 0.0364%로 줄이는 기술이 범용화된다. 몸이 이만큼 줄어들면 의식주도 획기적으로 줄어드니 1달러가 축소인간에게는 1000달러의 가치를 갖는다. 덕분에 줄곧 대출 상환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소인 전용 특별 구역에서 백만장자로 거듭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개인의 몸과 사회를 축소해도 달라지지 않는 빈부격차다. 극도로 궁핍한 제3세계 난민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소인세계의 문턱에 들어서지만 허락된 거주공간은 도시의 방벽 바깥 판자촌이다. 매일 시내 부잣집에서 허드렛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방벽 너머 이들의 거처는 마치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역처럼 생겼다.

두 번째 유형은 제임스 블리시의 ‘표면장력’(1952)과 류츠신의 ‘미세기원’(1998)이다. 두 단편 모두 인류가 종의 존속을 위해 소인으로 변하는 이야기다. ‘표면장력’에서 바다가 지표의 99%를 차지하는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난파 우주선의 승무원들이 익사하기 전, 지구에서 싣고 온 유전자은행에서 물속에서 살 수 있고 크기가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소인들을 새로이 유전적으로 조합한다. 해저에서 독자문화를 꾸리게 된 이 후손들은 훗날 승무원들이 남긴 금속명판을 발견하고 출생의 비밀을 깨우친다. ‘미세기원’의 무대는 지구다. 단 안타깝게도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지구다. 태양의 과도한 팽창에 지구 생태계가 괴멸된 탓이다. 다른 항성계로 달아날 우주비행 기술도 없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물방울만 한 도시 안에 들어가 살 수 있게끔 몸을 세균만 하게 줄이는 것이다. 덕분에 인류 집단은 불모지가 된 지표 곳곳에 물방울만 한 돔 도시를 짓고 여전히 번성한다.

제대로 쓴 SF라면 동일소재를 다뤄도 기존 동화나 소설과 달리 ‘개념적 돌파’란 명제를 늘 의식한다. 단지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대전환만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사회 전반에 몰고 올 중장기적 파장을 고민하고 예측하는 데 관심을 둔다. 덕분에 SF는 단지 빈부격차 고발이나 세태풍자를 넘어 명실상부한 토털문학으로 거듭난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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