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결심'하다[인터뷰]

이다원 기자 2022. 6.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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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일, 사진제공|CJ ENM


배우 박해일이 결심했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신작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서 작은 기쁨이라도 주고 싶다고.

“박찬욱 감독은 이전에 칸영화제를 갔을 때에도 송강호, 최민식 등 멋진 선배들과 수상의 쾌거를 이뤄왔잖아요. 같이 참여한 ‘박해일’이란 배우를 통해서도 수상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적어도 거기에 제가 일조한 거란 인정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하하.”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왼쪽)와 박해일.


그의 결심은 이뤄졌다. 최근 ‘스포츠경향’이 만난 박해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무적인 표정이었다. 개봉은 물론 칸영화제서 감독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루는 데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영화제 전날 시상식 참석 공지를 받았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뭐라도 받겠구나’ 싶어서 안도했어요. 심지어 송강호 선배도 그 영화제서 ‘브로커’로 동시에 남우주연상을 받았잖아요? 뭔가 국내 영화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헤어질 결심’으로 마침내, 사랑에 붕괴된 이의 깊이를 보여준 그가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놨다.


■집요하게 즐기기로, 결심하다

박찬욱 감독은 필름 속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스크린 위로 떠다니는 깊이있는 세계관이 그 증거다. 그 속을 헤쳐가야 하는 배우들에겐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쉬운 건 하나도 없었어요. 형사 역을 처음 해보는데, ‘해준’이란 형사 캐릭터도 기존엔 없던 류였거든요. 그러면서 송서래(탕웨이)로 인해 감정의 파도까지 겪어야 하니, 그 상황을 어떻게 보여줄 지가 숙제였죠. 박 감독은 명확한 테두리만 얘기하되, 배우에게 그 숙제를 풀게끔 맡기는 스타일에요. 유연하게 찍은 연기 안에서 좀 더 깊이있게 들어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조금 더 많은 노력이 들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면들과 낯선 지점을 발견해내는 거고요. 집요한 연출법이지만, 거기서 오는 희열이 컸어요.”

또 다른 동력원은 탕웨이였다. 함께 발맞춰 나가면서 영화를 한땀한땀 완성할 수 있었다.


“에너지가 좋은 배우예요. 그 에너지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방식도 있고요. 제가 연기를 준비하고 행하는 방식과는 또 차이가 이더라고요. 문화권이 다른 배우와 긴 호흡을 나누는 건 처음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언어 소통 문제로 촬영 전 고민을 했는데, 의외로 탕웨이가 먼저 마음을 열어줘서 금방 소통할 수 있었고요. 제가 연기할 때 리액셔을 아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해줘 고마울 따름이었죠.”

아내로 나온 이정현에겐 ‘팬’을 자처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팬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꽃잎’ 때부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배우라 좋아했거든요. ‘바꿔’란 노래를 부를 땐 그의 부채가 되고 싶었고요. 하하.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제게 여유롭게 대해준 덕분에 만족스러운 부부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이미지를 무기삼지 않기로, 결심하다

그의 눈빛은 특별하다. 나쁘지만 섹시해 떨칠 수 없다. 전작 ‘연애의 목적’과 ‘살인의 추억’이 그랬다. 헌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강점이 더욱 더 빛을 발한다. 혹자는 그 매력을 ‘우아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글쎄요. 전 그 단어를 듣기가 참 쑥쓰러워요. 제가 아닌 감독에 의해 뽑아낸 캐릭터 때문에 나온 단어니까요. 그 다음에 만나는 감독들도 전작들의 이미지에서 활용하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강점을 휘두르는 건 위험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배우로서 제 강점을 활용하는 순간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은 드라마의 캐릭터에 맞게 제 온도와 에너지를 조정하는 위치잖아요. 그걸 제 마음대로 한다면 안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번 영화를 보고 ‘연애의 목적’ ‘살인의 추억’ 속 눈빛이 미세하게 보였다는 이들도 있긴 했어요. 뭐, 그건 제가 가진 지점 안에서 감독이 활용한 거니 인정할 수밖에요. 하하.”

처음 밟은 칸국제영화제란 해외 시장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인정받은 그다. K콘텐츠가 전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 지금, 굉장히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그곳 사람들도 한국 영화를 진짜 좋아하고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된 것 같았어요. 그건 남우주연상과 감독상만으로도 증면된 거잖아요? 처음 간 영화제조차 익숙하게 느낄 만큼 낯설지 않은 시선으로 한국 영화인의 작품들을 반겨주더라고요. 그동안 선배 영화인들이 어렵게 차곡차곡 쌓아서 해외 시장을 뚫었고,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으로 전세계와 소통하기에 이르렀죠. 이젠 신인배우가 단숨에 어마어마한 연기력을 글로벌을 정복하는 사례까 나왔고요. 아마도 임권택, 봉준호, 박찬욱, 송강호, 최민식 등 많은 영화인이 땀을 흘려가며 쌓아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후배인 제가 누리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고요.”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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