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68) 재무제표 이면까지 분석해 '경영상 어려움' 입증..넥스틸 정리해고 정당성 이끈 법무법인 지평

김종용 기자 입력 2022. 6.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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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적자 누적 없었지만, 경영상 어려움 상당했다"
"넥스틸 인력 감축 적법".. 쌍용차 이후 8년 만에 정리해고 인정
재무제표 숫자 속 본질 파악한 지평, 동종업계 비교 분석
포항시 철강산업단지에 있는 넥스틸 1공장 내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유정용 강관의 미국 수출이 어려워지자 설비가 멈춰있다./조선DB

그간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라는 인식이 하나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2014년 정리해고를 실시한 한화투자증권이 3년 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하급심은 “정리해고 당시 경영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회사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그러나 최근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9일 국내 철강 제조업체 넥스틸이 2015년 대규모 희망퇴직에 이어 일부 근로자를 정리해고한 것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쌍용자동차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인정한 2014년 대법원 판결 이후 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넥스틸의 정리해고 사건은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1심과 2심 법원에서 수차례 판단이 뒤집혔다. 지노위와 중노위는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고, 1심은 넥스틸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이 정리해고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면서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넥스틸은 대법원 단계에서 법무법인 지평의 노동그룹을 선임했다. 대법관을 지낸 김지형(사법연수원 11기) 대표변호사를 필두로 인사와 노동, 집단적 노사관계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이광선(35기) 노동그룹장, 노동법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연수 중인 구자형(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가 합을 맞췄다. 중노위에선 10명의 소송수행자가 붙었다.

◇137명 명퇴 후 3명 정리해고…뒤집히고 또 뒤집힌 적법성 판단

지난 2015년 넥스틸의 경영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국제 원유 가격 하락과 미국 내 에너지 산업 침체로 주력 상품인 유정관과 송유관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넥스틸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비용 상승 효과가 발생했고, 유정관 판매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강관업계 전반의 위기 상황 속에서 급격한 영업 침체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넥스틸은 회계법인에 경영진단을 의뢰했다. 그 결과 매출액·영업손익 급감, 자금수지 악화, 미국의 유정관 반덤핑 관세 부과 등의 문제로 생산 인력을 248명에서 65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넥스틸은 생산직 근로자 137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그럼에도 위기 상황이 계속되자 회사는 회계법인에 2차 경영진단을 요청했고, 회계법인은 여전히 생산 인력을 65명으로 줄여야 하며 추정 생산량에 맞는 최소한의 인력 유지를 유동성 확보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결국 회사는 그해 9월 5명을 해고 대상자로 통보했고, 그중 사직서를 제출한 2명을 제외하고 3명을 정리해고했다.

정리해고를 당한 3명의 근로자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지노위는 정리해고에 대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 회피 노력, 노동조합과 성실한 협의를 거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부당해고라는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회사가 낸 재심에서도 중노위는 지노위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결국 회사는 중노위 판정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넥스틸이 당시 영업이익 급감으로 경영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고 판단한 반면, 2심은 넥스틸의 현금 흐름이나 부동산 보유 상황 등을 볼 때 노동자 137명이 희망퇴직한 뒤 추가로 3명을 해고할 만큼의 경영 위기는 아니므로 정당성이 없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지평 김지형 대표변호사(전 대법관), 이광선 변호사(노동그룹장), 구자형 변호사.

◇지평, 재무제표 분석해 정당성 입증…”숫자 뒤에 답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에 따른 대상자 선정 ▲해고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노조 등과 성실하게 협의 등 4가지 요건을 필요로 한다. 법원은 이 중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기업이 부도 위기에 빠질 정도의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에서도 회사가 정리해고를 시행할 당시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지평은 넥스틸의 재무제표를 미세한 단위로 쪼개 숫자 뒤의 이면을 꺼냈다. 재무제표상 숫자만 보면 단편적으로 기업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데, 당시 글로벌 경제 상황, 철강업계의 영업상 특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평은 넥스틸의 재무건전성 위기와 관련해 먼저 ‘부채비율’에 집중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넥스틸의 평균 부채비율은 272%에 이르는데, 제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200% 미만이고, 넥스틸과 같은 금속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57%에 불과하다는 점을 비교한 것이다. 심지어 272%에 달하는 부채비율도 전년도 대비 개선된 수치인데, 이는 생산량 감소 폭이 커지면서 원자재를 매입하는 채무 자체가 800억원 이상 떨어져 생긴 ‘착시 효과’라는 점을 분석해냈다.

지평은 ‘차입금 의존도’도 분석했다. 넥스틸의 차입금 의존도는 2014년 24%에서 2015년 55%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자기자본 대비 총 차입금 비율도 2014년도 말 87%에서 2015년도 말에는 224%로 크게 올랐다. 지평은 단순히 차입금이 늘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넥스틸과 같은 1차 금속업체는 2015년을 기준으로 차입금 의존도가 27%, 자기자본 대비 총 차입금 비율이 44%에 불과했는데, 동종업계 비교 분석을 통해 넥스틸의 경영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기업의 지급 능력을 평가하는 ‘당좌 비율’도 파고들었다. 당좌 비율은 기업의 자산 중에서 현금화가 용이한 당좌 자산(현금, 예금, 매출 채권, 대출 채권 등)을 유동 부채로 나눈 것인데, 당좌 비율이 높을수록 지급 능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은 95% 이상을 유지한다. 1차 금속업체도 2015년에는 평균 85%를 기록했는데, 넥스트는 2014년 말 23%, 2015년 말 17% 수준이었다.

그러나 원심은 넥스틸의 2015년도 이익을 두고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넥스틸의 당시 매출액은 1716억원, 영업이익은 125억원, 당기순이익은 25억원을 기록했다.

이 변호사는 “재무제표를 볼 때 단순히 단기 수익만 봐서는 기업의 경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며 “넥스틸이 당시 흑자를 기록한 이유는 철강업체 영업상의 특성 때문으로, 그 이면을 알고 결합해서 판단해야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평은 당시 넥스틸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품 중 일부의 수출 조건이 바뀌면서 2014년도 매출이 2015년도 매출로 잡히게 된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수출품은 배에 선적하는 순간 매출로 집계가 되는데, 당시 물품을 수입하는 국가에서 관세를 내야만 매출이 발생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570억원 상당이 2015년도 매출로 계산이 됐다.

이 변호사는 “당시 동종 업체인 아주베스틸은 회생을 신청한 상황에서 넥스틸이 살아남은 이유는 넥스틸이 원재료를 구입하는 곳이 국내 업체인 포스코이기 때문”이라며 “포스코가 납입 금액 213억원에 대한 상환 연기 신청을 묵인해 준 결과 부도를 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주베스틸은 해외 업체로부터 수입 원자재를 구매했는데, 상환 연기가 불가능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에서 판단을 할 때 단순히 재무제표의 당기순이익과 영업이익 등만 보고 흑자인데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며 “그러나 생산 활동이 없어서 부채 비율이 떨어지고, 원자재 구입을 포기해서 차입금 의존도가 올라가는 등 기업의 재무 상태는 재무재표의 숫자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소수(3명)인데도 정리해고의 적법성을 인정한 점이 대법원의 입장 변화를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심은 “이미 137명의 근로자를 감축했는데 또 인원을 추가 감축해야 할 만큼 경영상 위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남은 정리해고 인원이 적다고 해서 경영상 위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서 국내에서도 넥스틸의 정리해고와 비슷한 사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처럼 실제 도산 위기에 닥치기 전까지 구조조정을 부당해고라고 판단하면 기업이 살아날 기회는 날아가게 되는 것”이라며 “기업이 회생을 해서 일부 근로자 만큼은 살리기 위해 법에서 정리해고 요건을 경영상 위기로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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