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제로웨이스트에도 쓰레기 200g.. 알약포장재·콘택트렌즈는 어쩔 수 없었다

최효정 기자 2022. 6.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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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킬로그램(kg). 한국인이 1인당 연간 배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외려 플라스틱 폐기물이 더 늘어난 추세다. 배출된 플라스틱은 오랜 시간 바다를 표류하거나 미세한 크기로 부서져 생태계에 교란을 불러온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이처럼 생태계를 파괴하는 플라스틱과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캠페인이다. 텀블러 사용이나 개인 용기로 음식을 포장하는 등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환경보호에 동참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에는 곳곳이 암초였다.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닷새 동안 기자가 직접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했지만, 쓰레기 배출량 제로(0)는 불가능한 목표였다.

제로 웨이스트 기간 동안 소지한 다회용 식기, 빨대, 텀블러와 손수건(왼쪽), 제로 웨이스트 기간 동안 나온 콘택트렌즈와 진통제 쓰레기(오른쪽)/ 김민소 기자

‘제로웨이스트’ 실천 첫날. 오전 7시 30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며 카페에서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으려 텀블러를 챙겼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챙겼다. 차가운 음료를 먹을 때를 대비해 스테인리스 빨대까지 챙겼다. 그러나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손에는 쓰레기가 쥐어졌다. 카페의 키오스크에서 음료를 주문하자 주문번호를 알리는 종이와 영수증이 연달아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정오쯤 영등포 인근 분식집에 점심을 먹으러 가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식당의 식기와 물컵이 모두 일회용품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확인한 탓에 돌이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젓가락을 사용했다. 다음날부터는 쇠로 된 수저를 가방에 챙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통제와 콘택트렌즈도 변수가 됐다. ‘제로웨이스트’ 이틀째. 생리통이 너무 심해 견디기가 어려웠다.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찾았지만, 온통 종이갑과 PVC 포장재로 둘러싸인 것뿐이었다. 약사도 “약국 약들은 거의 PVC 포장이 되어 있어, 쓰레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진통제를 사고 발생한 쓰레기들을 챙겨나왔다.

습한 날씨에 콘택트렌즈를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해 첫날에는 안경을 착용했지만, 습한 날씨에 안경에는 자꾸 김이 서렸다. 틈틈이 손수건으로 안경 렌즈를 닦았다. 그러나 마스크와 콧등 사이 틈으로 숨이 새나갈 때마다 안경이 뿌예져, 이틀째부터는 다시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렌즈 껍데기와 알약 포장재가 쌓였다.

◇호의 담긴 ‘종이컵 커피’는 거절 어려워

다른 사람이 호의로 제공하는 간식이나 커피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이날 오후 8시쯤 사회부 수습근무를 위해 강서구에 있는 한 지구대를 찾았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경찰은 기자에게 따뜻한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 바로 다음 방문한 영등포구 한 파출소에서도 비닐에 포장된 과자 두 조각을 건네받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커피와 과자를 모두 건네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컵 한 개와 과자 포장 봉지가 쓰레기로 남았다. 과자와 커피를 주는 입장에서는 상대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 중인지를 모를 텐데, 받는 입장에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무안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작은 닷새 동안 쓰레기 배출을 ‘0′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차있었지만 이틀 내내 현실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일회용품 사용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본인의 의지가 있어도 ‘100% 제로 웨이스트’ 달성은 어렵다는 것과, 만약 이를 거부하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면 ‘유난떤다’는 비판은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마포구에 있는 전통시장 청과물 가게에서 구매한 자두(왼쪽)와 서대문구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포장한 치킨(오른쪽)/ 김민소 기자

주말이 시작됐다. ‘제로웨이스트’도 삼일차에 접어들었다. 외식이나 외출이 잦아지는 만큼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흐트러지지 않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모처럼 늦은 아침 식사로 치킨을 먹으려 했지만, 평소대로 배달을 시킬 수는 없었다. 기자는 전화로 치킨 한 마리를 포장 주문한 후, 집에서 직접 주방용 다회용기를 들고 가게를 찾았다. 가게 사장님은 이런 손님이 최근 들어 많아졌다며 먹음직스러운 치킨을 용기에 정성스럽게 담아주었다.

치킨가게 사장인 김모(35)씨는 “아예 배달 플랫폼에서도 다회용기 옵션을 추가하면 편리할 것 같다”면서 “포장 용기 가격도 한두 푼이 아니니 다른 카페 프랜차이즈처럼 다회용기를 가져오면 몇 백원 할인해주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장과 마트로 장을 보기 위해 외출했다. 전통시장 안에 있는 한 청과물 가게에서 자두 5000원어치 달라고 하고 다회용기를 건네자, 가게 주인은 손에 자두 몇 개를 덤을 쥐어줬다. 시장에서도 다회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는 반응이었다. 가게 주인인 이모(58)씨는 “근래에 개인 가방을 챙겨와 과일이나 채소를 담아가는 손님들이 많아졌다”며 “그런 손님들이 고마워서 남는 과일을 한두개씩 덤으로 준다”고 했다.

‘제로 웨이스트’ 사일차. 마침 주방 세제와 샴푸가 다 떨어져 가고 있는터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리필 상점’에도 가봤다. 이곳은 어떤 물건이든 ‘알맹이’만 파는 곳으로, 빈 용기를 가져와 내용물만 구매하는 상점이었다. 기자는 빈 세제 용기를 들고와, 1그램(g)당 10원에 판매되는 주방세제를 540g 구매했다. 샴푸와 트리트먼트는 비누 형식으로 된 샴푸바와 트리트먼트바로 갈음했다. 샴푸바와 트리트먼트바는 액체 형태의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고체 형태인 비누로 만들어서 플라스틱 포장용기의 필요성을 없앤 상품이다.

가게 영업 시간이 10여분 정도 남은 상황에도 가게 안은 제로웨이스트 상품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게를 찾은 대학생 정모(23)씨는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사야만 하는 생필품의 경우 생분해가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진 것을 산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에서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을 구입했다.

지난 26일 오후 7시쯤, 마포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모습(왼쪽)과 다회용기에 담긴 주방 세제가 저울 위에 올려진 모습(오른쪽)/ 김민소 기자

5일간의 제로웨이스트 체험을 마치고, 그간 모은 쓰레기 무게를 재봤다. 대략 200g 정도의 쓰레기가 모였다. 일회용 마스크 5장과 렌즈 용기, 알약 포장재, 종이컵, 나무젓가락, 샴푸바 포장 종이 등이었다. 예상보다는 많은 양이었지만 일회용 컵과 음식 포장 용기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나오던 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수준이었다.

체험 기간 동안 ‘번거롭다’는 생각은 떨치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챙길 것이 늘어나는 것과 텀블러와 다회용기, 손수건을 씻어 말리는 일은 무척이나 번거롭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 견디면 번거로움은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곤 했다.

리필 상점에서 만난 한 대학생의 말은 제로웨이스트가 그저 체험기에 지나지 않도록 기자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그는 본인 혼자서 제로웨이스트를 한다고 해서,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저로 인해 환경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해요.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환경보호에 대한 생각을 알리고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다”고 말했다. 200g의 무게가 가볍지만 더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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