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바치고 조국 살리다"..제2연평해전 20주기에 만난 '참전 유공자' 권기형씨

신승민 2022. 6. 29.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년이 흘렀지만 제게는 바로 어제 일 같아요. 하루라도 잊을 수 없이 매일 떠오르죠... 주변에는 아직까지 기억해주시고, ‘고생했다’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일요일(지난 26일)에 열린 추모 사진전에서는 어떤 분이 저를 딱 보시더니 ‘한 번 안아보자’며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덕분에 힘을 얻고 더 잘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 제2연평해전 참전 유공자 권기형씨

■ 서해 수호한 제2연평해전 용사들

오늘은 제2연평해전 2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두 척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서해 연평도 해상으로 기습 남하했습니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 해군 고속정(참수리 357·358호)은 3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군을 물리쳤고 NLL을 사수했습니다. 퇴각한 북한군은 정장(艇長)을 포함, 1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군은 고(故)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상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치료 중 전사) 등 6명이 전사했고 19명이 부상했습니다.

이 전투는 2015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연평해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1999년 6월 15일 발발한 제1연평해전에 이어 두 번째 연평해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매년 6월 29일은 조국의 바다를 지킨 우리 용사들을 기리고 승전(勝戰)을 기념하는 ‘제2연평해전의 날’입니다. 2012년에는 10주기 기념으로 해군 유도탄고속함(PKG) 6척 함명(艦名)에 교전 중 전사한 여섯 용사의 이름이 부여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20주기에 맞춰 기념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군은 오늘 경기도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기념식을 거행합니다. 지난 26일에는 군권익보호센터 주최로 서울 광화문에서 사진전 및 추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KBS가 현재 경북 구미에 거주하는 참전 유공자 권기형씨를 원격 인터뷰로 만나 20주기를 맞는 소회를 들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직후 부상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당시 20대 초반의 해군 상병 권기형씨. 권씨는 교전 당시 참수리 357호 K-2 소총수로 북한군과 끝까지 맞서 싸워 적을 물리쳤다. (제2연평해전 직후 촬영 KBS 보도 갈무리)


제2연평해전 참전 유공자 권기형씨(당시 참수리 357호 갑판병)가 KBS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교전 중 부상한 왼손을 보여주고 있다. 권씨는 당시 북한군 포탄에 손이 으스러진 상태에서도 대응 사격에 나서는 등 전투를 치러냈다.


■ “으스러진 왼손, 전우애로 극복”

1981년생 권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20대 초반 나이에 해군 상병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교전 현장에서는 참수리 357호 갑판병으로 K-2 소총수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개전 직후 북한 경비정을 조준하던 그는 적(敵) 포탄에 왼손을 맞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둘 쓰러져가는 아군을 보며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곧 방검복 끈으로 지혈을 하고 다른 전우의 소총을 받아 한 손으로 탄창을 갈아가며 대응 사격에 나섰습니다. 이미 손의 뼈와 살이 으스러질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전군의 사투(死鬪) 속에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펼쳤습니다.

권씨는 이후 접합 수술을 받았지만 더는 왼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진통제 등 약을 먹으며 후유증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언어 사용이 불편해지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까지 받았는데요. 그러나 그는 “전우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당시의 승전에 여전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아프다’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피 흘리며 옆에 쓰러져 있는 전우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죠. 오직 ‘싸우는 것’,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것뿐이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여섯 용사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PKG) 6척이 해상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사람 좋던 동혁이, ‘제대하면 친구 하자’고 했는데...”

교전 당시 권씨는 대응 사격 외에도 전우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아군이 탑승한 참수리 357호 예인에 나섰습니다. 적 포탄에 357호가 침수되기 시작하자 홋줄(정박용 밧줄)을 풀어 358호로 넘기고, 다시 받아 고정시킴으로써 두 함정 간 계류 작업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전우를 먼저 생각한 그는 “교전 당일마다 동혁이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당시 고 박동혁 병장은 저와) ‘애증 관계’였다고 해야 할까요? 나이는 동갑인데 한 달 차이 선임으로 와서 같이 배를 탔어요. 상병 때라 ‘군 생활 좀 피려나’ 했는데, 제 바로 위 선임이 온 것이었죠. (웃음) 그런데 동혁이가 사람이 참 좋았어요. 둘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더 가까워지고 돈독해졌고, ‘제대하고 진짜 친구 하자’고 했는데... (교전 중 부상으로 치료받다 세상 떠나) 가장 마음이 쓰이죠.”

참수리 357호에 탑승해 전투를 치른 권씨와 전우들은 교전 이후 ‘전우회’를 조직해 현재까지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제2연평해전 유족 중 고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씨에 대해 “20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건강이 좋지는 않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광화문 사진전에서 저희 전우들 가족사진을 기획하고 앨범을 제작해 선물해주려고 하셨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때 북한군 포격에 침몰한 우리나라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인양되고 있다. 교전 당시 357호 갑판병이었던 권기형씨는 홋줄을 풀어 358호와 고정시킴으로써 침수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해군 제공)


■ ‘그 손으로 일하겠냐’ ‘대북 정책 평가하라’

권씨는 참전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국가 유공자로도 등록됐지만 제대 이후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농업 경영인의 꿈을 접고 31살까지 10년간 여러 직장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날 선 질문들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손으로 일할 수 있겠냐’ ‘옆에 있는 이동식 화이트보드를 저기까지 들고 옮겨봐라’부터 ‘현 정부 대북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정치적 질문까지 있었습니다.

권씨는 “면접을 보러 가서 그런 식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곳도 많았다”며 “그렇게 10년을 거쳐서야 제 직장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현재 한 방위사업체에서 근무하며 구미에 정착, 2015년 결혼 후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씨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국가 기념일 때마다 현충원 등에 데리고 다니면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며 “‘아빠도 나쁜 놈들하고 싸워서 우리나라를 지켰다’고 설명해주면 ‘아빠, 최고!’라고 한다. 가족 덕분에 힘들어도 버티고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해군 장병이 제2연평해전 전적비 아래 당시 전사한 여섯 용사의 부조상에 헌화하고 있다. 참전 유공자 권기형씨는 화상 인터뷰에서 전투 이후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난 고(故) 박동혁 병장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해군 제공)


권씨는 마지막으로 제2연평해전을 기억해주는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대화를 위해서라도 당당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며 우리 국방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영상편집:송은혜)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신승민 기자 (ssm0716@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