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쑤기미탕·졸복국·시락국..통영에서 맛보는 '속풀이 삼총사'

지유리 2022. 6. 2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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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⑩ 경남 통영 해장음식
쑤기미탕
험악한 생김새…속살은 쫄깃
담백·깔끔 매운탕국물 ‘압권’

졸복국

식초 두르면 달큼한 맛 살아
쫀득한 껍질, 미나리와 궁합

시락국

장어뼈 달인 물에 된장 풀어
방아·산초가루 넣으면 ‘별미’
 

100년 전통 맛집 ‘진미식당’의 쑤기미탕(빨간 국물)과 졸복국. 생김새는 소박해도 깊은 국물맛은 비길 데가 없을 정도다. 통영=현진 기자


경남 통영의 음식문화인 ‘다찌’. 정해진 메뉴 없이 그날그날 들어온 식재료를 주인장이 마음대로 요리해 내놓은 술상을 일컫는다. 소박하지만 다채로운 상에 둘러앉아 잔을 부딪치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이 고장 사람의 멋이고 흥이다. 낭만이 아무리 좋아도 삶은 지속된다. 다찌를 맘껏 즐긴 다음날엔 속을 풀어야 한다. 그래서 해장음식도 발달했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쑤기미탕이다. 쑤기미는 수심이 낮은 연안 바위나 갯벌 바닥 등지에 사는 물고기다. 낯선 이름만큼 생김새도 독특하다. 길이는 20∼30㎝고 몸통엔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다. 등지느러미는 억센 가시가 박힌 듯 뾰족뾰족하다. 무시무시한 외모가 허세만은 아니다. 독을 품고 있다. 살짝 쏘여도 통증이 커 정약전은 자신의 책 <자산어보>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다”라고 적었다. 어릴 적 바다에서 물놀이 좀 했다 하는 갯사람 가운데 쑤기미에게 당하지 않은 이가 없단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건 맛이 좋아서다.

쑤기미탕 맛으로만 100년을 이어온 진미식당에 들렀다. 대접에 담겨 나온 음식을 들여다보는데 명성에 비해 때깔이 소박하다. 2대 사장으로 40년째 주방을 지키는 하옥선씨(75)는 “당일 잡은 쑤기미를 맹물에 넣고 고춧가루를 푼 다음 송송 썬 무·고추·파를 더해 파르르 끓이면 끝”이라고 조리법을 일러줬다. 비린맛을 잡겠다며 따로 넣는 비장의 무기는 없고 양념 계량은 감으로 한단다. 비법은 오로지 “신선한 재료”라는 것.

그렇게 내놓은 쑤기미탕은 국물이 압권이다. 매운탕이지만 칼칼하기보다 담백하다. 잡스러운 맛은 전혀 없고 시원하고 깔끔하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속이 풀리는 기분이 들 정도다. 살코기는 쫄깃하다. 끽해야 어른 손바닥만 한 생선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숟가락질 몇번에도 금세 배가 부르다.

한때 쑤기미탕은 통영 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불렸을 정도로 사랑받았고 또 흔했다. 요즘은 어획량이 크게 줄어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전문식당도 많이 사라졌다.

요즘은 졸복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추세다. 복어는 지역을 막론하고 최고 해장국 재료로 꼽힌다. 이곳 복국은 좀 특별하다. 몸길이 10㎝ 안팎의 작은 물고기인 졸복이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서다. 혹여나 작다고 우습게 보면 안된다. 국물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국물에 식초를 휘 한바퀴 둘러 맛보면 은근히 시고 달큼한 맛이 계속 입맛을 당긴다. 졸복은 살보다는 쫀득쫀득한 껍질이 별미다. 미나리나 콩나물 같은 건더기와 껍질을 한번에 집어 장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다.

지역산 장어뼈를 고아 맛이 일품이라는 시락국.


시락국은 속풀이 해장국이나 아침식사로 잘 어울린다. 장어뼈를 곤 국물에 된장을 푼 지역산 시래깃국을 말하는데 새벽녘에 뱃일을 마치고 먹던 것이 널리 퍼졌다.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를 끄는 음식이지만 진한 장어국의 맛과 향이 비릿해 타지 사람이 선뜻 도전하기 어렵다. 그럴 땐 이 지역서 즐겨 먹는 방아나 산초가루를 넣으면 된다. 아릿하고 싸한 기운이 더해지는 게 꽤 매력적이다. 여기에 김가루와 부추무침을 취향껏 곁들이면 좋다.

시락국의 참맛을 보려면 전통시장에 가야 한다. ‘원조’니 ‘맛집’이니 하는 간판이 있긴 한데 어딜 가도 맛있단 평가다. 내부 풍경도 비슷하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좁고 긴 테이블이 놓였고 그 위에 밑반찬 통이 죽 열 맞춰 있다. 손님은 넓은 접시에 반찬을 덜어 국과 함께 먹는다. 뱃사람·시장사람을 위한 한식 뷔페인 셈이다. 6000∼7000원짜리 한그릇에 반찬이 10여개 따라오니 이만큼 가성비 좋은 메뉴가 없다. 대개 점심 장사를 마치고 오후 3시쯤 문을 닫으니 가기 전에 영업 중인지 확인하는 편이 좋다.

산지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재료로 만든 해장음식은 술에 지친 속도, 세파에 휘둘린 마음도 풀어준다. 몸보신에도 그만이다. 단 하나 주의해야 할 게 있다면 뜨끈한 국물이 또 술을 부를 수 있다는 점. 통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해장국이면서 술국인 귀한 맛이다.

통영=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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