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막걸리의 변신과 규제개혁

2022. 6. 2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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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하면서 부쩍 가까워진 것이 막걸리다.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들에 갈 때 가져가기도 하지만 대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마시는 막걸리 한잔에 하루 피로를 풀곤 한다.

어쩌다 고향이 낯설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막걸리는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는가 하면 지나가던 농사꾼이 불쑥 들어왔을 때 별 준비 없이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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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 맞은 막걸리
미국·일본 방송사도 주목
제조·유통 등 규제 완화로
전통주산업 화려한 ‘부활’
생산자는 품질 개선 노력
정부는 제도 정비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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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하면서 부쩍 가까워진 것이 막걸리다.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들에 갈 때 가져가기도 하지만 대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마시는 막걸리 한잔에 하루 피로를 풀곤 한다. 그뿐인가. 어쩌다 고향이 낯설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막걸리는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는가 하면 지나가던 농사꾼이 불쑥 들어왔을 때 별 준비 없이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막걸리다.

옛날부터 막걸리엔 다섯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마시면 취하지만 인사불성이 되지 않고, 시장할 때는 요기가 되고, 힘이 빠질 때는 기운을 돋우고, 같이 마시면 응어리가 풀리고, 마신 후에 넌지시 웃으면 안되던 일도 된단다.

1909년 허가받은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을 수 있도록 규제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집에서 술을 빚어 대소사에 요긴하게 쓸 수 있었지만 최신 양조기술과 시설을 갖춘 희석식 소주와 맥주가 보급되면서 막걸리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70년에 2559개이던 막걸리업체가 1990년에 1321개로 줄고 같은 기간 출고량은 희석식 소주와 맥주가 3.5배·15.3배나 늘어난 데 비해 막걸리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해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75%에서 20% 수준으로, 그 후 2000년에는 5%까지 떨어지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의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며칠 전 미국 방송사 CNN은 ‘막걸리는 어떻게 소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나?’란 보도를 통해 다음 한류의 주인공으로 막걸리를 지목했다. 오래된 양조기술을 재현하고 여기에 건강과 이야기를 입힌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 K-문화와 연결하는 막걸리의 변신에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있다니 이만한 청년 일자리와 쌀 소비책이 또 있겠는가! 5월초 일본 공영방송 NHK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류산업 르네상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며 경북 의성군 단촌면까지 찾아왔다.

이처럼 막걸리의 변신이 주목받는 것은 코로나19 등 악조건에서도 시장이 성장해서다. 2020년 주류시장은 전년보다 1.6% 후퇴한 반면 막걸리는 52.1% 성장했다. 또 주류 수출액도 0.2% 증가에 그친 데 비해 막걸리는 27.6%나 증가했다. 특히 2010년 847개던 막걸리업체가 2020년에는 961개로 늘었다.

1990년대초부터 전통주산업 부활을 위해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해온 필자는 징세편의 위주의 규제를 풀고 민간의 활력과 창의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를 6도로 고정하고, 잣·인삼·대추 등 농산물조차 첨가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통신판매는 고사하고 공급구역이 따로 정해져 있어 시·군 밖으로 유통이 금지됐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규격과 시설 기준, 원료 사용, 소규모 주류 제조 등 제조와 유통 관련 규제를 정비하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고 강력한 의지와 함께 20여년간 이해당사자의 설득과 공감대를 얻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체 수가 늘어났다고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 스스로 끊임없이 품질을 개선하고 시장을 개척할 때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다. 저도수 고급주로서 막걸리의 위상을 정립하고 문화를 결합한 마케팅을 펼치고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은 물론 품질관리와 표시제도를 통해 차별화하며 소비자를 설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경제난국 속에서 모처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막걸리의 명품화를 위해 공직자들은 사업자의 어려움을 제 몸의 상처처럼 여기는 마음(시민여상·視民如傷)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사업자도 소비자의 기호를 생각하며 백번이고 천번이고 시험해서 다시 고치는 백시천개(百試千改)의 장인정신이 필요할 때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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