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진영은 국민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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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50일이 지났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정부 요직 인선, 부동산 및 탈원전 정책 시정, 코로나 이후 경제 및 민생 위기 대처, 정상 외교 등으로 분주한 기간이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대통령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처럼 활달한 소통 역시 앞선 정부와 다른 면모다.
하지만 이는 권력 교체 시 으레 따르는 변화이자 이전 정부의 문제들에 의해 반(反)정립된 성과다. 새 정부가 진정한 개혁적 정부인지 아닌지는 다음 질문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새 정부는 진영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가?” 사회와 국가가 아닌 파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진영 정치는 외교, 안보, 경제, 민생 등 국정의 모든 영역을 파행으로 이끄는 주범이다. 조선 시대 붕당 정치와 진배없는 후견주의, 소모적 정쟁, 정치 보복의 근원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 적폐 중의 적폐는 한 번도 제대로 수술받은 적이 없다. 권력 변동 때마다 요란스레 강조되는 적폐 청산은 진영 정치 청산이 아닌 진영 교체에 머물렀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로 몸살을 앓는 공영방송이 그 대표 사례다. 필자는 어이가 없을 만큼 후진적이고, 심지어 난폭하고 탐욕스러운 행패 정치로까지 퇴행한 이 폐습을 새 정부가 끊어낼 수 있기 바란다. 지금까지 어떤 권력도 하지 못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서 필자는 그 가능성을 본다. 이념과 독선의 늪에 빠진 진보 진영 권력의 일원이길 거부하며 탄생한 권력이다. 반대 진영 인사인 한덕수 총리 발탁, 반지성주의를 지탄한 대통령 취임사, 인혁당 피해자에 대한 초과 배상금 이자 면제 조치, 양향자 전 민주당 의원의 반도체특위 위원장 영입 등에서 일관된 탈(脫)진영의 성향과 의지가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탈진영은 반대 진영뿐 아니라 우군 진영과도 맞서야 함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진영 정치의 공고한 네트워크는 3부 권력기관을 넘어 시민사회, 노동, 교육, 언론, 문화, 종교 등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진영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자칫 사회 내 모든 기득권 집단을 적으로 돌릴 위험을 내포한다. 좌우 진영 공히 이 신뢰할 수 없는 변종 권력에 이미 차가운 눈길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산맥 같은 세력을 상대해야 하는 막막함이, 대통령이 검찰과 지인 인맥에 의존하는 이유일 성싶다. 하지만 이는 ‘검찰 공화국’ 내지 ‘비선 통치’ 시비처럼 온당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영을 넘어서기 위해 새 정부가 의지할 곳은 어디인가. 국민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국민 역시 과잉 정치화한 진영의 일원으로 사분오열해 있다는 주장은 단언컨대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오류가 국민이 지닌 복잡하고 일견 모순된 정체성을 오독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노사모, 대깨문, 개딸 같은 팬덤 정치 현상이나, X세대, MZ세대, 알파 세대처럼 뭉뚱그린 세대론으로는 국민의 모습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국민은 한편으로 민주주의, 애국심, 보편적 인류애의 열정에 불타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녀 교육이나 부동산·주식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사적 욕망의 주체다. 공공 문제에 대한 식견 있는 시민인 동시에 공론의 장에 거친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열혈 행동주의자다.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공동체의 성원인 동시에 영화 ‘범죄도시2′의 폭력에 매혹되는 누아르(noir)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다중적 정체성, 이성과 감성의 양면성이 사회에 활력과 다채로움을 부여한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한 양태를 관통해 현저하게 드러나는 우리 국민의 모습은 그 어떤 제도적, 인습적, 집단적 굴레에도 갇히길 거부하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개인이다. 한마디로 ‘반(反)진영적’이다.
2000년대 이후 정치권력은 이러한 국민의 속성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한쪽으로 경도된 진영의 정책을 전개함으로써 실패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드러내는 이념적 주체의 모습을 과신함으로써 이들이 지닌 사적 욕망과 부딪쳤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는 실용 정치란 미명하에 국민의 사적 욕망에 올인함으로써 이들이 지닌 이념적, 도덕적 열망의 반발을 초래했다.
진영 정치 극복은 권력이 재단한 국민이 아닌, 본모습대로 국민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상식과 규범에 기초해 파당이 아닌 사회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할 때 국민은 새 정부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다. 그 어떤 진영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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