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문화一流] 獨 영화감독 헤어초크, 뮌헨서 파리까지 언 들판을 걸은 까닭은
1920년대의 독일 영화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나치 시대에 정치 선전물로 변질되었고, 제2차 대전 이후에는 이전의 전통마저 단절되었다. 미국의 오락영화들이 독일의 영화관을 점령하였다. 그런 이후에 독일 영화를 다시 세우려는 이른바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 섰던 영화감독이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80)다.
그의 대표작 ‘피츠카랄도’는 아마존 밀림에 오페라하우스를 세우려는 집념의 인물을 그렸다. 피츠카랄도는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는 꿈을 가졌지만, 실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는 밀림의 고무를 최단거리로 운송하기 위해 증기선을 들어서 산으로 옮기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였다. 그런데 페루에서 진행된 영화 촬영에서도 헤어초크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실제로 배를 들고 산을 오르게 하였다. 그는 폭우와 산사태와 살인적인 모기떼 속에서 험난한 촬영을 감행했다.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남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을 이루려는 인간을 그려냈던 감독 자신이 바로 피츠카랄도였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를 가리켜 평론가는 “이토록 광기에 찬 독일 영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 역시 드물 것이다”라고 말했다.
헤어초크의 영화들은 늘 문명에 대한 비판과 자연에 대한 찬미, 그리고 예술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다. 그는 평생 상업영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이상적 예술 세계를 지킴으로써, 스스로 세상에서 잊혀간 인물이다.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열악한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몽상가들을 그렸다.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는 그들은 괴팍하고 강인한 인간으로 보이지만, 가슴속의 꿈을 놓지 않는 가장 낭만적인 인간들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트뤼포가 “살아 있는 인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이라고 불렀던 헤어초크는 감독일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이자 배우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10여 권의 책을 쓴 뛰어난 문장가다.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연출한 것을 필두로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많은 오페라를 감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하다.
헤어초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이에른 지방의 시골에서 수돗물도 수세식 변기도 전화도 없이 텔레비전과 영화도 모르는 채로 성장했다. 그는 어려서 음악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뒤늦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접하고 오페라 마니아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서 영화감독이 되려는 꿈이 생겨났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그에게 투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용접공으로 일하며 돈을 모으고, 영국으로 건너가 밑바닥을 전전하며 영어를 익혔다. 그렇게 7개 국어를 구사하고 여러 예술 분야에 두루 해박한 명감독이자 전방위적(全方位的) 예술가가 되었다.
1974년 늦가을에 헤어초크는 존경하던 로테 아이스너(1896~1983)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이스너는 1962년에 독일의 젊은 영화인 26명이 모여서 ‘뉴 저먼 시네마’를 선언하였을 때, 그들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옹호한 영화평론가였다. 그런 면에서 그녀를 잃는다는 것은 30대의 헤어초크와 그의 동료들에게 어머니를 여의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헤어초크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혼자 걸어서 파리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면 그녀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막하지만 촛불 같은 염원이었다.
헤어초크는 자기가 사는 뮌헨에서 아이스너가 입원중인 파리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는 3주 동안 독일 남부와 프랑스 동부의 이름 없는 마을들을 거치며 800여㎞를 걷는다. 겨울의 텅 빈 평원을 걷고, 버려진 헛간이나 빈집에서, 때로는 축사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강풍과 폭설과 겨울비와 우박을 다 겪고, 낯선 주막에 들어가면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차라리 무의미함을 모두 실천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옳고, 계산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걷는 행위는 무모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과 육체를 쏟아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헤어초크 같은 태도가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심장이 세상을 만든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물어왔다. 아내가 불치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도보 여행을 하던 헤어초크가 매일 저녁마다 남의 헛간에서 썼던 책을 내밀었다.
이윽고 헤어초크가 파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스너는 아직 살아있었다. 누군가 헤어초크 이야기를 해주어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더 쇠약한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그윽하게 미소 지었다. 헤어초크가 혼자 걸어왔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듯했다. 헤어초크가 말했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저는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 아이스너는 10년 가까이 더 살았다. 1982년에 독일 영화계의 공로상인 헬무트 코이트너상이 제정되자, 첫 수상자로 아이스너가 선정되었다. 헤어초크는 그녀를 위한 수상 축하 연설에서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대상을 향한 진실한 소망은 그 자신도 날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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