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토슈즈 신고 흑조를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저자·북튜버 2022. 6.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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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여성성 버려!”

영화 ‘모어’(2022)는 댄서이자 배우인 모지민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어린 시절부터 넘치는 끼로 장기자랑마다 춤과 노래를 뽐냈던 모지민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호모라고 멸시받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존재가 발레였기에 모지민은 운명처럼 춤춘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진학해 선배에게 들은 한마디. 선배는 모지민의 뺨을 후려치면서 말한다. 너 그 여성성 버려!

‘모어’를 보면서 학창 시절의 어떤 친구들이 떠올랐다. 유난히 말투가 여성스럽고 유머러스하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혹시 그때 나는 몰랐던 어떤 린치가 있지는 않았을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그 친구는 잘 살아 있을까? 혹시 세상을 떠났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이내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이런 걱정에 개연성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영화에는 동성애자 행사인 퀴어 문화 축제 장면이 나온다. 행진하는 사람들 옆에서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저건 제정신이 아니야!” 그럼 뭐가 제정신일까. 제정신이란 뭘까. ‘정상적’으로 만나서 ‘정상적’으로 결혼하고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살아야만 제정신일까. 정상의 경계가 참 빡빡하기도 하다. 나의 짧은 머리와 편안한 옷차림조차 그 경계를 통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모지민처럼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토슈즈를 신고 흑조를 추고 싶었던 사람은 엄연히 있다. 어떤 규정으로도 자신을 포섭하지 못해 경계를 넘나들며 춤을 추는 사람은 엄연히 있다. 그는 이미 있고, 그 무엇으로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이미 있는 그를 어쩔 텐가? 머리가 짧고 문신을 한 나도 이미 있고, 다이어트를 거부하고 근육을 키우는 내 친구도 이미 있고, 신나게 혹은 경박하게 몸을 흔드는 내 친구도 이미 있다. 다 이미 있고, 우리는 누구도 해치지 않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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