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혈연을 넘어, 함께 밥을 먹는 '식구'로
지난달 칸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2022)는 전작 <어느 가족>(2018)처럼 혈연관계가 아닌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며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상영 중인 이 영화는 브로커 상현과 동수가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기를 팔기 위해 몰래 데려오지만, 아기를 버리고 갔던 엄마 소영이 다시 돌아오면서 예기치 않게 세 사람이 함께 아기의 새로운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가족(家族)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혈연’을 통해서 이뤄진 가족은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모아놓은 운명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가족은 언뜻 사랑으로 맺어진 것처럼, 화목한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어디 현실에서 그런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가족이란 남들이 안 볼 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할 만큼, 사랑은커녕 그 누구보다 상처를 주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동수처럼 부모에게 버림받기도 하는가 하면, 많은 아이들이 신체적 폭력, 친족 성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에서 차별, 착취, 방관, 정서적 학대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다.
정상적으로 사랑받고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부모의 인생을 책임지고자 그들의 욕망을 대물림하여 트로피가 되고 노예의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고통받는다. 가족은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그 피로 맺은 인연은 쉽게 끊어질 수 없고, 누군가는 죽어야 끝이 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은 너무나 쉽게 경계를 넘고, 쉽게 요구하고, 쉽게 희생을 기대한다. 그들의 집은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쳐다보기도 싫은 지긋지긋한 ‘집구석’이고, 특히 남성 가장에 권력이 집중되는 가부장제와 서열은 이 혈연 가족을 본질적으로 위태롭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의 모습은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아닐까? 함께 자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소박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 정이 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단어가 가족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같이 따뜻한 밥을 먹고, 울고 웃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확장된 의미의 가족을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선택한 가족은 관심사나 가치관이 비슷하며, 선을 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이다. 이들과 함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세상이 불평등하고 부조리해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각자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상현, 동수, 소영은 옷의 단추를 달아주고 아기의 분유병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가족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는 돈이 기준이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엄마 소영이 납득할 수 있고 아기를 정말 사랑해줄 수 있는 입양부모를 찾으려 애쓴다. 소영의 아기는 피를 나누지 않은 어른들, 상현과 동수, 경찰부부와 입양하려 했던 어느 부부의 돌봄과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란다.
지난달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에는 밥을 먹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데, 가족에게 함께 밥을 먹고 소박한 일상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주인공 삼남매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어머니의 집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된다. 고향 친구들은 카페에서 같이 음식을 먹고, 울고 웃으며 소통하면서, 이름도 모르는 외지인 구씨는 함께 밭일하고 삼시세끼를 먹으면서 삼남매 가족의 소중한 식구가 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4인 가족이라는 모범적인 혈연 가족의 개념이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더없이 소중해진 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나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 ‘식구’를 생각해본다.
윤선경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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