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소음사회, 그리고 지방자치
우리 사회는 소음사회다. 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의 시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굉음 소리는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배달 문화는 여름이 되면 그 위상을 드러낸다. 특히 여름밤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굉음은 위력이 대단하다(모든 오토바이가 그러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러한 생활소음은 인내를 요구한다. 배달원들의 현실을 이해해 보려고 하지만, 과도한 소음은 납득하기 어렵고 철저히 규제하지 않는 공권력을 원망하게 한다.
양산 평산마을이 전국의 관심거리가 된 지 벌써 석 달이 돼 간다. 고즈넉한 농촌의 평화롭고 조용하던 마을이 시위대의 농성 소리와 집회로 병들어 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현직 대통령의 사저 앞 거리에서도 똑같은 농성이 이어진다. 여과 없이 나오는 갈라치기 혐오의 말은 지켜보는 이를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분열과 혐오의 사회가 됐는지 정말 가슴 아프다.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손흥민이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골든 부츠상을 받고,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가 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지만, 유독 정치권만은 그러지 못하고 병들어 가는 느낌이다.
대통령 사저 앞의 시위와 배달 오토바이 등 생활소음 문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치’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두 문제는 크게 보면 중앙정치의 문제이고 법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역의 문제이고 생활의 문제이다. 지역에서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자치’의 문제다. 중앙정부의 대응이나 집시법 개정 문제는 논의가 되지만, 정작 그 역할을 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논의에서 사라진 상태다. 더욱이 자치경찰이 출범한 지 1년이 됐지만, 생활소음 논의에 자치경찰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도외시돼 있다. 생활소음 문제야말로 자치경찰이 앞장서서 정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미국은 주(州)법이나 시의 조례 등으로 집회나 시위, 확성기 사용을 자율적으로 규제한다. 보스턴시의 경우 주거지역에서의 집회를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금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조례로 일반적인 집회 및 시위를 규율한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가와사키시는 ‘가와사키시 차별 없는 인권 존중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인권 존중과 사회의 공적 질서라는 관점에서 이를 규율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반론이 반드시 제기될 것이다. 우리 현실은 선진 외국과 다르고 조례의 제정 범위 역시 한계가 있다고.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고.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정보공개법의 모태가 됐던 ‘청주시 정보공개조례’와 기본소득의 상징이 된 경기도의 ‘청년 기본 조례’ 등은 모두 기존 틀을 깬 사고의 결과라는 것을. 이들은 법령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인 조례라고 하여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던 조례였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 등을 거쳐 이제는 모범 조례로 인정받고 있다. 해당 지방의회가 철저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다.
우리 소음·진동관리법 제2조의2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쾌적하고 건강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소음·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관리할 수 있는 시책을 수립·추진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소음 문제에 대한 대책 수립을 지방자치단체에 명령하고 있다.
차제에 생활소음 대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요청해 본다. 생활소음 대책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의지와 역량의 문제다.
7월 1일이면 제9대 지방의회가 출범한다.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광역 시의회에는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둘 수 있게 됐다. 기성 정치 논리와 이론의 굴레에서 벗어난, 참신하고 주민 친화적인 의정활동을 기대해본다.
이때 ‘○○시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한 소음에 관한 기본조례’ 등의 생활자치에 관한 문제를 우선 논의해 보면 어떨까. 집시법상 문제가 없다고 하여 주민의 생활과 정서를 병들게 하고,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기초질서 위반행위를 그냥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주민에게 다가가는 제대로 된 의정활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최우용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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