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균형의 미학

국제신문 2022.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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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이르렀다는 ‘하지’가 지났다. 이 시기에는 낮밤의 균형추가 한껏 낮에 기울어 있어 농도 짙은 밤하늘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초여름의 별빛에서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눈빛의 아련함이 느껴진다. 여명 속으로 성급히 사라지는 아련한 별빛을 따라, 밤과 함께 그리움도 점점 더 짧아져 가는 것 같다.

이즈음 우리 밤하늘에서 황도 12궁의 별자리 중 처녀자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처녀자리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별자리다. 그리고 아스트라이아가 들고 있던 수평 저울, 천칭자리는 곧 7월 초가 되면 볼 수 있다. 그림이나 조각상 등에 표현된 정의의 여신은 대개 한 손에는 수평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칼 또는 법전을 든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법원에는 하나 같이 수평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동서고금을 넘어 수평 저울의 균형은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지혜의 상징인 것이다.

균형의 지혜는 우리 일상에서도 쉬이 찾을 수 있는데, 워커홀릭(workaholic) 즉, 일 중독자에게 ‘나 자신’ ‘여가’ ‘성장’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제안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개념이 그러하다. 일과 삶에 있어 균형을 강조하는 워라밸이 주목받는 것은 우리 삶의 균형추가 일에 기울어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서도 균형의 지혜를 찾을 수 있다. 국가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리하여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확보하는 삼권분립, 특별법과 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꾀하는 정부 시책 등 다양한 형태의 균형 원리가 조직 운영의 핵심 가치를 위해 작용한다. 덧붙여 지역 현안인 ‘부울경 메가시티’의 성공 사례가 우리나라 균형 발전을 견인할 그날을 고대한다!

균형의 지혜는 예술에 있어 심미적 요소로도 발현된다. 음악에 있어서 소리의 장단고저 또는 소리 간의 구조적 대비 등이, 그리고 미술에 있어서는 공간 안에서의 물리적, 시각적 균형이 대칭과 비례 등을 통해 긴장과 이완의 형태로 작품의 조화로운 통일성을 표현한다. 춤에서는 보다 입체적인 균형미를 찾을 수 있는데, 춤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전통 줄타기는 아마도 균형의 심미성을 극대화한 종합 예술인 것 같다. 곡예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다른 나라의 줄타기와 달리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해학과 풍자를 담은 재담, 반주 음악, 춤사위에 가까운 기예 등 가·무·악·희가 종합된 전통 공연 예술로서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부채 하나 손에 들고 외줄 위에 서 있는 줄광대의 모습에서 균형의 지혜를 생각해본다. 내딛는 걸음마다 느껴지는 중력 즉 외부로부터 오는 물리적 힘을 가르며 걷는 줄광대의 모습이 ‘전통의 보존·전승’과 ‘전통의 재해석·현대화’, ‘예술성’과 ‘대중성’, ‘정체성’과 ‘융복합’ 등 서로 다른 성질의 물리력 속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오늘날 국악과 흡사하다. 중력은 찰나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고 줄광대를 땅에 메다꽂을 것이다. 그리고 외줄이 신작로만큼이나 넓고 곧게 느껴지기까지 그는 엄청나게 중력과 싸웠을 것이다. 비록 목숨을 담보해야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는 외줄에서 걷고 뛰고 때로는 중력을 거슬러 날개 없이 하늘을 노니는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우리 국악이 지금은 비록 외줄 위에서 걸음걸음마다 중심을 다잡고 있지만, 다양한 물리력을 융화하여 넘노는 그 판놀음에 우뚝 서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중력은 세상 갖가지 것들을 자리매김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력이라는 물리적 힘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그 치우침이 지나쳐 쓰러지거나, 쓰러져 고착되지 않기 위해 피와 땀을 쏟아낸다. 고착되지 않은 것들은 균형 감각을 통해 중력을 헤쳐 나간다. 균형 감각은 외부로부터 강요받은 물리적 힘을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혜인 것이다.

드넓은 세상, 내 갈 길 가려면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이정엽 국립부산국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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