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끼니] 강진 묵은지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2022.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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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김장김치와 달리 오래 숙성시키기 위한 묵은지 전용 김치를 따로 만들기도 한다.

사실 '묵은지'라는 말은 전라도 지역의 사투리였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강진군 묵은지 사업단'을 꾸리고 '강진묵은지'를 고유상표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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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양산 통도사의 말사 ‘서운암’의 주지께서 어느 해에 재미있는 일을 하나 벌이셨다. 김장김치 한 독을 절 뒤편 대숲에 묻었다. 볕도 들지 않는 응달 아래에서 잠든 김칫독은 한참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주변 대나무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더란다. 김칫독을 꺼내야겠다 싶어 땅을 팠더니 대나무 뿌리가 얽히고설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김칫독 하나 꺼내자고 포크레인까지 동원됐다. 그렇게 해서 서운암 대숲에 잠들었던 김치는 무려 13년 만에 바깥세상과 만났다.

13년 동안 대숲에서 잠잤던 ‘서운암’의 묵은지.


맛칼럼니스트라는 직업 덕분에 그 귀한 김치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13년 만에 존재를 드러낸 김치 한 보시기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발효취가 사방에 진동했다. 불쾌하지 않은, 묘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향이었다. 배추의 식감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특유의 신맛은 어지간한 샴페인 못지않게 경쾌했다. 무엇보다 미생물이 살아있는 김치가 13년이나 상하지 않고 건재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날 이후 묵은지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떴다.

‘김치부심’이 유난한 한국인은 묵은지에 대한 애정 또한 만만찮다. 보통 묵은지라 하면 오래된 김장김치를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드는 음식에는 ‘좀 더 오래된 것’을 찾는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6개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최소 2, 3년은 기본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기 위해서는 배추의 힘이 좋아야 하고 양념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김장김치와 달리 오래 숙성시키기 위한 묵은지 전용 김치를 따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묵은지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묵은지는 그냥 먹기보다 식재료로 사용하거나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때, 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다. 김치찌개나 김치찜을 끓일 때 묵은지를 사용하면 별다른 양념이나 비법 없이 누구나 ‘김수미 아줌마’가 될 수 있다. 씻은 묵은지는 각종 생선회와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 생선회의 육질과 묵은지의 식감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비린 맛을 깔끔하게 없애준다. 씻은 묵은지를 들기름에 볶으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반찬이 된다.

이런 활용도 덕분에 묵은지는 외식업의 아이템으로 특히 주목받는다. 사실 ‘묵은지’라는 말은 전라도 지역의 사투리였다. 그런데 대중이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하다 보니 뒤늦게 표준어로 인정받아 2015년부터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

묵은지의 관심과 수요를 지역의 특화산업으로 육성시키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이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강진군 묵은지 사업단’을 꾸리고 ‘강진묵은지’를 고유상표로 등록했다. 2021년에는 16개 업체가 2억56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제조업체가 35개로 늘었고 소비자의 수요 또한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강진묵은지는 100%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청각 조기 돼지고기 찹쌀죽 등 강진군 특유의 비법이 가미됐다. 강진군에 등록된 몇몇 묵은지 제조업체에서 만든 6개월~2년 된 묵은지를 먹어보니 ‘인생김치’라 할 만큼 대단한 묵은지였다. 묵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번 맛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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