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나에게로의 초대

국제신문 2022.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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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가 끝이 났다. 이번 학기를 함께 보낸 조원들과는 작별을 하고, 다음 학기를 함께 할 조원들을 만날 것이다. 의대의 교육과정(6년) 중 마지막 2년은 이렇게 매 학기 조를 구성하여 진행한다. 3명이 한 실습 조가 되어, 병원의 교수님들을 따라다니며 실습을 통해 의학을 배운다.

같은 조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대부분의 일정을 함께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학기 조원 명단이 발표되면 모두들 큰 관심을 가진다. 대부분은 설렘이 크다. 다음 학기 조원으로 정해진 친구와 마주치면 괜히 인사도 더 친절하게 해보고, 밥 약속을 잡기도 한다.

나도 다음 학기를 기대하고 있다. 2학기 조원들과 어떻게 하면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즐겁게, 그러면서 공부도 실속 있게 챙길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좋은 한 학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괜찮은 한 학기를 만드는 데 있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의 문제이다. 그건 바로 내가 조원들에게 나의 사적인 얘기를 마구 쏟아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 얘기를 장마처럼 쏟아내고 싶다는 기분이 든 지 몇 달이 되었다. 친구나 지인에게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털어놓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 가정사, 최근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 등을 줄줄이 읊어대고, 나를 봐달라고 하고 싶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른 이에게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긴장이 누그러진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제 말 몇 마디 나눠본 예비 조원들에게 그러고 싶다는 게 문제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다짜고짜 사적인 얘기를 풀어내는 것은 상대를 적잖이 당황시킬 수 있다.(상대가 상담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 얘기를 들었을 때 적절하지 못한 반응을 할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이면에는 ‘땡깡’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실습을 같이 돌다가 내가 미흡할 때가 오면, 난 힘든 일을 겪어온 사람이니 좀 봐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누든 결국은 나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대로 만난 지는 얼마 안 된 학우들이지만 나의 억울함, 분노 같은 감정을 뒷바라지해 달라고 하고 싶어진다. 또는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고 싶어진다. 내가 부모님에게 의지를 못 하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의존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 부쩍 크다.

예비 조원들에게 성급하게 기대려 하면 관계가 난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습 등을 함께 하다 친해지는 조원이 생긴다면, 차근차근 조금씩 서로에게 본인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서로를 천천히 응원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챙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대고 싶고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날 떠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땡깡을 피우고 싶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 내가 나를 가장 잘 달래줄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의지하며 사는 게 삶이라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역시 나 자신이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과하게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우울할 때가 많았다. 요즘에는 그런 긴장이나 화 불안 우울함이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원하는 것은 보통 그 사람의 마음속에 꽁꽁 숨겨져 있어 찾아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분명 있지만, 결국 본인 내면의 그 어렴풋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어렴풋한 나를 들여다봐 주고,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주는 게 나를 돌보는 방법임을 느끼고 있다. 2학기 실습은 금방 온다. 힘든 실습 중에 누구보다 나를 잘 챙기는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동욱 동아대 의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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